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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만사 ▣/알아두면 유용한

옥상에서 알몸 흡연, 저 변태일까요?

by 세월따라1 2008. 8. 30.
옥상에서 알몸 흡연, 저 변태일까요?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한겨레

»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Q 옥상에서 알몸 흡연, 저 변태일까요?
 

 

운동과 각종 스포츠를 좋아하는 남자입니다. 제가 헬스를 다닌 지 5년이 넘었는데요, 과거에는 몸이 바짝 말라서 보기 흉했는데 군대제대를 하고 나서 살이 좀 붙어 헬스를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운동하여 지금은 남들이 인정하는 몸짱입니다.(177cm, 79kg) 그런데요, 지난 해부터 이상한 버릇이 생겼어요.

 

저희집이 옥탑방인데, 제가 팬티만 입고 나와서 담배를 피곤합니다. 어떤 때는 팬티도 안 입고 담배를 피기도 하고요. 서울 화곡동 주변 집들이 다 고만고만해서 쉽게 저를 보지는 못할거라 생각하는데 자꾸 편안하게 입고(벗고?) 누군가에게 보이려고 하는 버릇이 생기는것 같아 요즘 제가 변태가 아닌가 고민돼요. 남자가 보는 것은 챙피하지만 여자가 만약 보게 된다면 챙피하다는 생각은 안 드는 것 같네요. 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억지로라도 멈춰야 하는 것인가요?

 

 

 

 

 

A ㅋㅋ 당신은 변태가 되기에는 법적으로 하자가 많은 나르시스트

 

 

4년 전 뉴욕으로 출장갔을 때 <네이키드 보이스 싱잉>(Naked Boys Singing)이라는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열명쯤 되는 백인 남자들이 나와 말 그대로 훌러덩 벗고 춤추고 노래하는 뮤지컬이었죠. 저질 에로영화라도 처음엔 끈적끈적 뜸을 들이는데, 이건 원, 착석하고 불이 꺼지자마자 다 벗고 떼로 등장하는 겁니다. 눈 가리고 경악했습니다. 너무 다들 컸단 말입니다. 그런데 웬걸요, 성욕이 자극되기는커녕 오분쯤 지나자 적응이 되면서 아무런 감흥이 없어지더니 뮤지컬이 끝나고 나서는 옷 입은 남자들이 훨씬 더 섹시해 보였습니다. 참 희안하죠?

 

화곡동 주민분들, 비위 약하신 분들은 당신을 보고 ‘헉! 저런 불경스런!’ 하겠지만, 대부분은 저 멀리서 허우대 좋은 남자가 똥폼 잡고 있다면 ‘으아, 오늘 땡 잡았다 ㅋㅋ’ 이럴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모두들 자연스럽게 적응할 것이고 한없이 자유로워 보이는 당신이 내심 부러울지도 모르겠네요. 내가 안 보이고, 안전하게 보호받는 상황이라면, 타인의 악의 없는 무방비 상태를 엿보는 것은 그리 기분 나쁘지는 않습니다. 통풍 잘되어 기분 좋을 당신의 권리나, 당신의 생쇼를 훔쳐볼 주민들의 권리를 뺏을 권한은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조사 좀 해 봤습니다. ‘경범죄’ 항목 중 ‘과다노출’ 문항이 눈에 띄는군요. “여러 사람의 눈에 뜨이는 곳에서 함부로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거나 속까지 들여다 보이는 옷을 입거나 또는 가려야 할 곳을 내놓아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주는 사람”에게는 1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과료의 형을 부과한다고 하네요. ‘과다 노출’과 비슷한 레벨의 경범죄로는 우리 모두 한번씩 해 봤을 장난전화, 새치기, 담배꽁초나 쓰레기 아무데나 버리기 등이 포함됩니다. 그집 마당은 과연 ‘여러 사람의 눈에 뜨이는 곳’일까요? 흠!

 

께름칙해서 다시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옥수동 파출소(나 옥수동주민)에 전화를 했죠. 우리 동네에 옥탑방들이 많거든요. 경쾌한 목소리의 여자 경장이 받더군요. 저희 집에서 내다보이는 옥탑방에 어떤 총각이 나체로 나와 담배피고 있는데 심히 불쾌하다, 고발할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길바닥에서 그런 거 아니죠?” “예, 늘 옥탑방 마당에서 …” “그렇다면 그 사람의 집 울타리 안이니까 법적인 제재는 불가능해요. 흐흐. 가셔서 좋게 좋게 타이를 수밖에요.” “(일부러 불만스럽게) 무섭게 어떻게 제가 직접 가 봐요? (이렇게 발 뺄줄 알았어,흥)” “… 아, 그럼 대신 저희가 방문해서 인근 주민으로부터 자제해 달라는 민원이 들어왔다고 전달할게요.” “(오잉?) 아, 예 ….” 우리 경장님, 새 일거리에 갑자기 들뜨셨습니다. “전화 주신 분, 성함하고 주소 먼저 … 아참, 거기 옥탑방 위치도 좀 알려주세요.” 당황한 저 … 그만 이 대목에서 전화를 확 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 … 지금 장난전화 경범죄 저지른 거 맞니? 헉, 자세히 보니 일반인 대상의 장난전화만 10만원 이하고, 경찰서·소방서 등 관공서 대상은 200만원 이하라는?

 

 

휴우! 어쨌거나 결론은 작정하고 하산하지 않는 한 당신, 그리고 화곡동 주민분들은 대략 안전하시다는 겁니다. 직성이 풀릴 때까지, 아니 파출소에서 자택 방문 올 때까지 옥탑방 마당에서 실컷 벗고 담배 태우시란 말입니다. 그 행위를 통해 심신의 안정을 얻고 지역주민들에게 사사로운 즐거움을 줄 수만 있다면야. 자, 변태냐구요? 다시 또 검색해 보니 변태가 되자면 음부의 단순 노출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와 결과가 따라줘야 한답니다. 즉 음부가 노출돼도 타인이 바로 앞에 있어줘야 되고, 그로써 성적 쾌감을 느낀다고 해도 곧 이어서 자위행위를 해줘야 한다는 유권해석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오른손가락, 지금 담뱃재 털고 있죠? 흐흐, 변태는 원한다고 아무나 쉽게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굳이 따지자면 당신은 노출변태가 아니라 좀 칩(cheap)한 나르시스트 정도?

 

도리어 변태는, 생판 모르는 남의 고민을 덜기 위해 ‘알아도 인생에 별반 도움 안 되는 하찮은 상식’을 찾아 오만군데 전화하고 검색하며 짜릿함을 느끼는 나 같은 인간이나, 이 짓을 일년 넘게 먼저 시작하셨음에도 여전히 지친 기색 하나 없으신 ‘어쩌다가 오지라퍼’ 김어준 오빠 같은 분이 진짜 변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조만간에 한번 화곡동으로 뜨겠습니다. 노랑 리본 좀 매달아 놔, 알았지?

 

임경선 칼럼니스트

※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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