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치킨공화국
전국 5만여 곳의 닭집에서
매일 60만마리의 닭이 목숨을 바친다
프랜차이즈만 줄잡아 240여개
시장은 좁고 덤비는 이는 많은 곳
성공보다 망하는 길이 가까운, 말 그대로 전쟁터다
출출한 당신, 튀김닭 먹고나서 꼭 기도하시라
“우리동네 치킨집 안녕하시길…”
출출하다. 닭이나 한 마리 시켜 먹을까? 닭집 전화번호를 뒤지는 순간부터 고민은 시작된다. 튀긴 닭으로 할까, 소금구이는 어떨까, 요즘은 오븐구이가 뜨던데…. 지난번 시켰던 치킨집은 그새 사라졌고, 새로 생겼다며 놓고 간 스티커만도 여럿. 신인 가수 ○○○가 광고하던 치킨이 어떤 거더라…?
매일 밤,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진다. 무려 5조원짜리 시장을 놓고 벌이는 ‘닭들의 전쟁’이다. 한국인들의 영원한 간식 닭고기 시장은 가볍고 만만한 외식거리지만 업체들에게는 진입장벽이 없어 늘 새로운 경쟁자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처절한 격전장이다. 누구나 쉽게 뛰어들 수 있는 대신 맛의 차별화 요소가 없으면 바로 망하는 것이 대한민국 ‘치킨 산업’이다.
경쟁이 이렇게 치열한 나라는 없다
비비큐치킨과 교촌치킨의 공통점은? 두 업체 모두 가맹점 모집을 안 한다. 기존 가맹점이 1000곳을 넘었기 때문이다. 더는 점포를 내줄 지역도 없지만 더 큰 이유는 기존 가맹점들을 보호해야 하는 탓이다. 치킨 시장이 얼마나 포화상태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세자영업의 대명사인 치킨집은 현재 전국 5만 곳으로 추정된다. 전국 4만여 곳에 이르는 편의점보다도 많다.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얼추 인구 1000명당 1곳꼴이므로 250가구마다 닭집이 하나씩인 셈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의 닭고기 소비량은 적은 편이다. 한국계육협회 통계를 보면, 지난해 한국인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은 13.3㎏. 한국인이 즐기는 작은 닭 영계를 조리용으로 정리하면 1마리가 1㎏ 정도이므로 한국인들은 한 명이 1년에 닭 13마리 정도를 먹은 셈이다. 닭을 많이 먹는 미국, 브라질 등에 비하면 3분의 1에서 5분의 1 수준이다. 계육협회 이재하 차장은 “삼겹살 소비가 워낙 많아 닭 소비가 상대적으로 적고, 다른 나라는 닭고기가 주식인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간식 개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부위별로 사먹는 외국과 달리 우리는 마리째 먹는 경향이 강한 것도 소비량이 적은 이유로 꼽힌다.
소비량은 많지 않은데 닭집은 넘쳐나다보니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전체 치킨집의 40%, 2만여 곳에 이르는 프랜차이즈 닭 체인점들은 그야말로 죽기살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군소업체까지 포함하면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는 모두 240여 곳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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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잡는 닭이 한국을 잡는다
치킨 프랜차이즈는 크게 두 가지다. 작은 동네 닭집이 성공한 뒤 분점을 내다가 프랜차이즈가 된 ‘자생형’, 처음부터 프랜차이즈 본사를 세워 가맹점을 받는 ‘계획형’이다. 전통적 프랜차이즈인 전자의 대표가 교촌치킨, 기업형인 후자의 대표가 현재 체인 1위인 비비큐다.
경쟁 최고인 대한민국에서도 ‘닭의 메카’로 꼽힐 만한 곳은 대구·경북이다. 주요 업체들 중 상당수가 영남에서 경쟁력을 검증받은 뒤 전국 시장에 진출했다. 간장 맛으로 90년대 돌풍을 일으키며 단숨에 강자가 된 교촌치킨은 1991년 경북 구미에서 치킨집을 열고 입소문이 번져 95년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20년 넘게 버텨온 멕시카나도 87년 대구·경북 지역에서 작은 치킨집으로 시작해 성공한 뒤 91년 서울로 진출했고, 2004년에는 본사를 서울로 옮겼다.
왜 대구·경북일까? 해석은 분분하지만, △입맛설 △안동찜닭설로 크게 나뉜다. 영남 지방이 자극적인 맛을 즐기기 때문에 닭 간식이 발달했다고 보는 것이 ‘입맛설’이다. 지금보다 훨씬 매웠던 원조 양념치킨이나 짭짤한 간장소스 치킨이 여기서 개발됐다. 양념치킨은 80년대 초 대구 칠성시장에서 시작돼 멕시카나 등이 본격 상품화했다. 간장 소스 덕분에 교촌은 전국구로 뜰 수 있었다.
‘안동찜닭설’은 안동찜닭이 보여주듯 닭 요리가 경북지역에서 일찌감치 발달했다고 설명한다. 예전에는 기름이 흔치 않아 튀김이 귀했고 그래서 닭을 찜닭으로 즐겨 먹었는데 이후 튀김이 유행하면서 더욱 다양한 닭요리가 이 지역에서 개발됐다는 이야기다. 반면 호남은 닭을 기르는 농가의 70%가 밀집해 있어서 기르는 닭을 가정에서 즐겨 먹었기 때문에 굳이 사서 먹는 외식 닭요리의 필요성을 못 느껴 치킨업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지역구 & 전국구
치킨업계는 지역적 특색이 강한 것도 특징이다. 전국구인 대형업체들과 함께 특정 지역에서 번성하는 지역구 치킨업체들이 공존한다. 아주커치킨의 경우 광주·전남 지역에만 가맹점 97곳이 퍼져 있다. 전북에는 다사랑치킨·햇살치킨, 부산에는 땅땅치킨·무봤나촌닭 등이 집중되어 있다. 서울은 워낙 크다보니 한 도시 안에서도 강남과 강북으로 강자가 나뉜다. 강남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둘둘치킨과 강북에서 신흥 강자로 상승 중인 네네치킨이 대표적이다.
치킨의 본고장 영남은 유독 경쟁이 심하다. 대구·경북에서는 최근 들어 호식이두마리치킨이 급성장하고 있는데, 다른 지역보다 ‘지역구 강자’가 자주 교체되는 편이다. 여기에 부산에서 시작된 티바두마리치킨이 경북 지역을 공략하면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경북 영주가 거점인 오대두마리치킨도 경북에만 12곳 가맹점을 개설하면서 가세하고 있다.
무너진 1세대 ‘5대 강자’
현재 점유율이나 가맹점 수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곳은 비비큐치킨. 비비큐에서는 자사 시장점유율을 프랜차이즈 시장의 20% 정도라고 주장한다. 동네통닭집까지 포함한 전체 치킨집으로 따지면 10%에 못 미치지만 최근 5년째 부동의 1위를 지켜왔다. 그 뒤를 이어 교촌치킨, 농협이란 든든한 배경으로 치고 올라오는 목우촌의 또래오래, 20년 넘는 역사와 뚝심을 자랑하는 멕시카나와 페리카나 등이 있다.
그러나 치킨업계는, 오늘의 강자에게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 곳이다. 90년대를 풍미했던 치킨 프랜차이즈 1세대들 중 상당수가 밀려났다. 1세대 5대 강자는 멕시카나, 페리카나, 처갓집, 이서방, 스머프 등이 꼽힌다. 지금 페리카나와 멕시카나 이외 업체들은 명맥만 유지하거나 고전 중이다. 90년대 제법 강했던 맥시칸 치킨의 경우 1985년 대구 효목동에서 계성통닭으로 시작해 한때 가맹점이 1100곳이 넘었지만 지금은 사실상 가맹점 사업에 손을 놓고 있다.
1세대 치킨들이 밀려난 이유는 소비자들의 입맛이 바뀌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탓이다. 닭고기는 유행이 빠르고 거세다. 과거 재래시장의 튀김닭에서 80년대 초반에는 양념치킨이, 그 이후로는 양념 바비큐, 간장 소스 치킨, 매운 불닭 등을 거쳐 요즘에는 오븐치킨까지 늘 새로운 메뉴들이 등장한다. 여기에 시장 진입이 쉬워 유행 치킨이 새로 등장하면 금세 유사 프랜차이즈가 생긴다. 차별화된 기술이나 노하우를 내세우기도 쉽지 않다. 최근에는 조류 인플루엔자가 치킨업계의 구조조정을 부르기도 했다. 무수한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겼다가 추풍낙엽처럼 사라지는 치킨업계에서 잠깐의 방심은 곧 퇴장으로 직결된다.
참살이·해외진출이 화두
치킨에서 근본은 역시 튀김이다. 유행 치킨은 길어야 1~2년, 보통 6개월 정도가 전성기라는 설명이다. 비비큐치킨 관계자는 “트랜스지방 때문에 튀긴 닭보다는 오븐에 굽는 치킨이 요즘 뜨고 있지만 우리는 반짝하는 거라고 보고 있다”며 “불닭을 보면 안다”고 장담했다. 그래서 업체들은 기본 간판 메뉴 외에 얼마나 많은 곁가지 메뉴로 시장 흐름에 대처할 것이냐를 놓고 고심한다. 교촌치킨 관계자는 “간장맛이 질린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매우 좋아한다”며 간장을 기본으로 하고 여러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역사가 오래된 업체의 경우는 여러 유행 치킨을 두루 갖춘 다양한 메뉴가 무기다. 20년 넘은 멕시카나는 메뉴가 가장 많고 다양하다.
요즘 치킨업계의 화두는 웰빙, 그 다음 국외 진출이다. 건강에 좋은 기름으로 튀기거나, 아예 튀기지 않고 굽는 닭 등을 개발하는 데 주력한다. 국외 진출 경쟁도 뜨겁다. 대형업체들은 대부분 직영이나 현지업체와 제휴를 통한 가맹점 방식으로 진출해 있다. 음식이 다양한 중국에선 고전하고 있다. 드문 성공 케이스로는 스페인에 진출한 비비큐를 많이 든다. 치킨업계가 국경 밖을 바라보는 이유는, 국내 시장이 이미 꽉 찼기 때문이다. 불철주야 달리는 치킨배달 오토바이가 외국 땅에서 시동을 걸 날도 멀지 않았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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