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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만사 ▣/이런일 저런말

30년…40년…75년…참 오래가는 만화들

by 세월따라1 2009. 1. 16.

왼쪽부터 〈열혈강호〉, 〈짱!〉

 

회사원 신두영(30)씨는 얼마 전 인터넷서점을 검색하다 탄성을 질렀다. “<짱!>이 아직도 나와?” 신씨가 고등학생 시절 봤던 만화 <짱!>이 지금껏 연재 중이었기 때문이다. 1996년 고등학교 ‘주먹 짱’으로 신씨를 사로잡았던 주인공 현상태는 여전히 고등학생으로 남아 있고, 단행본은 54권까지 출간됐다.

 

일본엔 30년 넘게 연재되는 작품 상당수
한국도 ‘짱!’ ‘열혈강호’ 등 장수만화 늘어
우려먹기 비판있지만…“독자와 교감이 힘”

 

불로초라도 삶아 먹은 듯 끝날 줄 모르는 만화들이 있다. 수십년째 이어지며 초기 독자들의 청소년 자녀들까지 세대를 이어가는 장수 만화들이다. 한때 대단한 인기를 누리는 만화는 많아도 십년 넘게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장수 만화는 실로 드물다. 작가 스스로도 예상 못한 생명력을 얻은 장수 만화,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

 

코믹무협만화 <열혈강호>(전극진 글, 양재현 그림)는 <짱!>보다도 2년 먼저 등장해 올해로 15년 48권째 연재를 이어가고 있다. 만화 팬들 사이에서 ‘궁극의 엿가락 전설’이라 일컬어지는 신형빈 작가의 성인 극화 <도시정벌>도 빼놓을 수 없다. 1996년 시작해 얼마 전 6부 118권이 나와 지금까지 모두 248권에 이른다. 서울 청량리 집창촌에서 시작한 무대가 이제 일본, 미국, 중국으로 글로벌화되었다.

 

■ 대를 이어 킬킬거리는 만화 일본 만화 가운데에는 30년 넘게 연재되는 작품들도 상당수다. 한 작품이 한 작가의 필생의 업이 된 셈이다. 세계를 누비는 냉철한 킬러 이야기 <고르고 13>은 사이토 다카오가 1969년 연재를 시작해 지금까지 단행본 150권이 나왔다. 무장괴한은 물론 귀신, 인공위성과 싸우고도 살아남는 그는 ‘절대 죽지 않는 남자’로 불린다.

1976년 연재를 시작해 162권까지 나온 아키모토 오사무의 <여기는 가쓰시카구 가메아리 공원 앞 파출소입니다>는 일은 안 하고 항상 놀기만 하는 사고뭉치 경찰이 주인공인데, 주인공과는 달리 작가는 초인급 근성을 발휘해 30년 이상 주간지 연재를 한 번도 쉬지 않았다.


찔끔찔끔 이어지는 만화도 있다. 나가노 마모루의 <파이브 스타 스토리>는 애니메이션 잡지 <뉴타입>에 1986년 4월 연재를 시작해 23년째로 접어들지만 단행본은 12권밖에 나오지 않았다. 작가 스스로 일생의 작업이라며 공을 들이는 탓이다.

 

질질 끌며 오래가기로는 70년대 한국 소녀들을 사로잡았던 미우치 스즈에의 <유리가면>도 빠지지 않는다. 중단과 재개를 되풀이해 악명이 높다. 작가가 신흥종교 교주가 되어 더는 만화를 그리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는데, 실제로 ‘우주신령’을 믿는 ‘오-엔 네트워크’라는 단체를 이끌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 만화 작업을 그만둔 것은 아니어서 올 3월부터 연재를 다시 시작한다는 소식으로, 이달 26일 일본에서 43권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 대를 이어 그리는 만화 1969년 연재를 시작한 일본의 ‘국민 만화’ <도라에몽>은 한때 여덟 개의 잡지에 동시 연재하기도 했다. 작가 후지코 F 후지오는 후지모토 히로시와 아비코 모토오 두 작가의 합작 필명으로, 1987년 팀 해체 이후에도 후지모토 히로시가 숨진 1996년까지 연재를 계속했다. 죽을 때까지 한 작품만 그린 경우다.

 

작가가 세상을 떠나도 계속되는 만화도 있다. 블론디와 대그우드의 결혼생활을 그린 신문만화 <블론디>는 올해로 75돌을 맞았다. 칙 영이 1930년 연재를 시작했고, 1973년 그가 사망한 뒤 아들 딘 영이 대를 이어 그리고 있다. 올해 65살인 딘 영은 자기도 자식에게 대를 잇겠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1954년부터 <한국일보>에 연재를 시작해 50년 넘게 연재 중이다. 1939년 5월 에 등장한 <배트맨> 시리즈는 원작자 밥 케인 이후에도 프랭크 밀러 등 여러 작가들의 변주로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시대에 따라 분위기를 달리하며 70년간 연재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가 2005년 박봉성 작가가 숨진 이후에도 ‘박봉성 프로덕션’이란 이름으로 꾸준히 연재가 이어져 현재 5부 165권까지 출간되었다.

이처럼 오래 연재되는 것은 그만큼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동시에 출판사와 작가가 인기작을 최대한 우려먹는 경제공동체가 되어버린 것도 그 이유다. 팬들로선 ‘짜증나면서도 정 때문에’ 계속 보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장수 만화는 장수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만화들에는 없는 힘을 갖는다. 오랜 세월 독자들과 교감하면서 쌓인 힘이다. 만화연구가 김낙호씨는 장수 만화의 핵심을 “작품과 독자가 한 시대를 같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독자가 작품과 함께 성장하는 데 장수 만화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김송은 <팝툰> 기자

출처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newspickup_section/3335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