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제주도에서 열린 한국과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 특별정상회의의 오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앞치마 두르고 꼬치 굽는 모습이 일제히 보도됐다. '만찬 외교' '비즈니스 런치'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썩 괜찮은 이벤트였지만, 어딘지 부자연스럽게도 느껴졌다.
정상회의 직후라 캐주얼 차림으로 바꿔 입을 상황이 아니었어도, 훨씬 자연스럽게 보일 방법은 있었다. 즉석에서 양복저고리를 벗고, 넥타이 풀고,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제주도 바닷바람에 머리칼 휘날리며, 앞치마 차림으로 꼬치를 굽는 여유와 센스를 발휘했더라면 한층 자연스럽고 친근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사진 이야기를 꺼낸 건, 취임 이후 지난 1년 3개월간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도 양복저고리 위에 앞치마 두른 듯, 뭔가 노력하는데 소통이 부족하고,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양복을 고집하는 답답함의 연속이었다는 생각에서다. 초기 내각 인선 때부터 두루 인재를 발탁하지 않고 늘 입던 양복만 고집했고, '한반도 대운하' 대신 '4대강 정비사업'이라는 늘 비슷비슷한 양복 차림이었으며,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나 한나라당 내분 때도 속 시원히 양복저고리 벗어 던지고 소통하질 못했다.
재임 중에는 논란도, 비판도 많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이후 '서민 대통령'으로 불리며 수백만 국민이 조문하고 눈물짓고, 그 와중에 이 대통령 지지율까지 덩달아 내려앉는 걸 보면, 이 대통령의 리더십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짚게 된다.
다섯살 차이지만 함께 1940년대생으로 동시대를 살아온 노무현(1946년생) 전 대통령과 이명박(1941년생) 대통령은 정치 민주화, 경제 성장이라는 우리 현대사의 양대 키워드를 각각 압축하는 인물들이다. 전혀 다른 삶인 듯해도, 가난이라는 출발점에서 시작해 남다른 의지로 인생을 개척한 자수성가형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익히 알려졌듯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상고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며, 이 대통령은 가난한 목부(牧夫)의 아들로 태어나, 막노동을 하면서 어렵게 대학에 진학했다.
우리 정치에 오랜 족적을 남긴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을 거치고 난 후, 국민이 연이어 선택한 대통령이 자수성가형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리더십에 거는 기대가 희망과 변화, 그리고 역경을 뚫고 인생을 개척한 것처럼 국정 운영에서도 추진력과 역동성을 발휘해달라는 뜻이다.
하지만 입지전적 인생의 두 대통령 모두 권력의 정상에 올라가서는 한 발짝 더 나아간 모습을 보이는 데 미흡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투사형 정치인에서 국가 경영자로 변신하는 데 부족했고, 이 대통령은 실무형 경영인의 틀에 갇혀 포용의 정치인 모습을 발휘하는 데 역부족이다.
25년 전, 1984년 1월의 조선일보에는 '재계의 인재들'이라는 연재기사가 실렸다. 후진적 기업문화 속에서도 능력 하나로 성공한 경영인을 소개하는 기획이었는데, 1~3회가 당시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에게 할애됐다. 당시 보도된 주위의 평가는 이랬다. "그룹 총수의 의견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다'고 이견(異見)을 제시하는 극소수 최고경영자의 한 사람" "인사 스타일만 해도 능력은 있으나 소외되는 사원을 족집게처럼 찾아내 요직에 중용하는 사람" "지연·학연에 대해 얘기를 듣거나 인사에 관련시키는 데 대해서는 심한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사람"….
1년 반 전 530여만 표라는 역대 최대의 표 차로 당선될 때, 국민이 이 대통령에게 기대한 리더십도 그것이었다. 점퍼 차림으로 현장을 누비며 온갖 위기를 돌파한 카리스마였다. 부초처럼 흔들리는 민심을 서운해하기에 앞서, 앞치마 두르면서 양복저고리 벗을 만큼의 융통성도 발휘하지 않는 지금의 리더십이, 그런 기대치에서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이 대통령 스스로 곱씹어봐야 할 것 같다.
강경희 경제부 차장대우 khkang@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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