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 처음으로 완성된 1만t급 이상 대형 상선(商船) '팬 코리아호' 진수식.
1972년 5월 16일 부산 영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조선소에서 한 행사가 열렸다. 부산항 내 모든 선박이 뱃고동을 울리고 바다 위에 떠 있는 소방정에서는 5색으로 물들인 물을 쏘아 올렸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완성된 1만t급 이상 대형 상선(商船) '팬 코리아호' 진수식(進水式·조선소 작업장에서 만들어진 배를 바닷물로 띄워 보내는 행사)이었다.
이전까지 국내 조선소는 중소형 어선을 겨우 만들어내는 수준이었다. 세계 조선·해운업계에서 선박이 대형화되는 추세를 보이던 당시, 1만8000t급 팬 코리아호 건조를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대형 선박 생산 시대가 열렸다.
이 배는 곡물·광물 등을 나르는 화물선으로 범양상선(현 STX팬오션)이 1971년 1월 발주했다. 1972년 당시 소련의 대흉작으로 곡물 운임이 2배 가까이 폭등하면서 팬 코리아호는 운항 1년 만에 선박 건조비 이상의 돈을 벌어들였다.
1972년은 한국 조선산업의 일대 전환기였다. 그해 3월 23일 울산 미포만 백사장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울산시민 등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현대중공업 조선소 기공식이 열렸다.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영국 금융회사 사장들에게 거북선이 그려져 있는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며 "우리는 수백년 전에 이런 배를 만들었다"며 조선소 건립 자금을 빌린 일화도 탄생했다. 삼성이 1977년 조선업에 뛰어들면서 한국의 조선업계는 '규모의 경제'를 갖춰갔다.
한국 조선업계는 과감한 투자와 한국인 특유의 근면함, 획기적인 생산 방식 도입 등으로 2000년대 이후 확고한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김승범 기자 sb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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