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발사된 우주왕복선 엔데버호 발사에 쓰인 추진 로켓의 너비는 4피트 8.5인치(143.51㎝)였다. 사실 기술자들은 추진 로켓을 좀 더 크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로켓은 기차로 옮겨지는데, 중간에 터널을 통과하려면 너비를 열차 선로 폭에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 열차 선로의 너비는 어떻게 정해졌을까? 19세기 초 영국은 석탄 운반용 마차 선로를 지면에 깔아 첫 열차 선로를 만들었다.
영국 마차 선로 폭은? 2000년 전 말 두 마리가 끄는 전차 폭에 맞춰 만들어진 로마 가도의 폭이 기준이다. 결국 인간은 2000년 전 말 두 마리의 엉덩이 폭으로 길을 정한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지식 e 시즌4'(북하우스, EBS 지식채널e 지음)는 이 사례를 '경로 의존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한번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고도 여전히 그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고의 관습을 일컫는 말이다. 스탠퍼드대의 폴 데이비드 교수와 브라이언 아서 교수가 주창한 개념인데, 매너리즘이나 사고의 관성이란 개념으로도 바꿔볼 수 있겠다.
동전 옆면의 빗금도 경로 의존성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수백 년 전, 금화나 은화를 쓰던 금·은본위제 시절, 사람들은 금화나 은화를 미세하게 깎아내 빼돌렸다.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해 동전 옆면에 빗금을 쳤다. 그러나 금화나 은화는 물론 금·은본위제도 사라진 지금은 빗금을 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나라가 옆면에 빗금을 쳐서 동전을 발행한다.
최근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금융위기도 경로 의존성과 무관하지 않다. 파생 금융상품의 급성장 등 경제 여건이 급변하고 있는데도 경제 주체들이 과거의 관습과 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이 화(禍)를 불렀다. 많은 사람들의 결정에 쉽게 동조하는 '전략적 보완성'이나 얽히고설킨 제도들 때문에 제도를 쉽사리 개혁하지 못하는 '제도적 보완성'도 금융위기의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 위기 극복 과정에도 이 같은 인간의 비합리성을 이해해야 올바른 개혁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도 소비자들의 비합리적인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마케팅에 성공하기 어렵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기업에게 혁신적인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갖고 있는 마음의 틀(mental frame)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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