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진 흙속 동물 5%뿐, 그나마 토양 65% 훼손
대왕고래(흰수염고래)는 지구에 현존하는 동물 가운데 가장 크다. 길이 32m에 무게는 190t에 이른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생물이 땅속에 산다.
한 개체인지 논란이 있긴 하지만, 2003년 미국 오리건 주에서 발견된 뿌리 썩음 균류인 아밀라리아는 여의도 면적의 약 3배인 8.9㎢의 걸쳐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나이 2400살에 무게는 605t이었다.
내게도, 네게도, 나무에도 선충이…“이세상은 선충의 것”
동물과 식물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균류는 유기물을 분해하는 중요한 땅속 생물이다. 곰팡이, 버섯, 효모가 대표적인 균류이다.
인류는 달 표면보다 바다에 관해 더 모른다. 땅속세계는 바다보다 더 낯설다. 흙속 동물 종의 5%만이, 바다 밑 침전층 동물의 0.1%만이 과학계에 밝혀져 있을 뿐이다.
이본느 배스킨은 <땅속 생태계>(최세민 옮김/창조문화/1만 8천 원)에서 “흙은 가난한 자의 열대우림”이라고 했다. 기름진 정원의 흙 한 삽에는 아마존 우림에 사는 생물종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종이 산다는 것이다.
코넬대 생태학자 데이빗 피멘텔에 따르면, 비옥한 흙 1㏊(가로세로 100m)에는 지렁이와 절지동물 각 1000㎏, 원생동물 150㎏, 조류 150㎏, 박테리아 1700㎏, 균류 2700㎏가 들어있다. 워낙 작은 생물이라 마릿수가 아닌 무게를 따진 것이다.
다윈은 40년 동안이나 지렁이를 연구했다. 우리의 인식도 기껏 땅속의 거대 생물인 지렁이가 토양환경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수준에 머문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는 <흙에도 뭇 생명이>(지성사/1만 3천 원)에서 은사인 고 최기철 박사의 동물분류학 수업시간을 회고했다. 교실에 서 있는 교수나 학생 몸속에 있는 기생충도 선충이고 나무마다 다른 선충이 사니, “이 세상은 선충의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땅 위의 호랑이처럼 선충은 땅속 세상의 포식자이다. 그런 선충이 목장 흙 1㎡에 1천만 마리가 산다.
광합성 없는 밤엔 토양 속 미생물이 오염물질 흡수
흙은 생태계의 기초이다. 그 위력은 실내에서도 느낄 수 있다. 화분으로 실내공기오염을 줄이는 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그 주역이 식물이라기보다 화분의 흙속 생물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김광진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박사는 <미국 원예학회지>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화분에 심은 팔손이와 벤자민의 지상부와 뿌리부가 휘발성 오염물질 제거에 각각 어떤 기여를 하는지를 측정했다.
밤과 낮 동안의 제거량은 비슷했다. 그런데 낮 동안 식물의 지상부와 지하부가 거의 비슷한 제거능력을 보인데 비해 밤에는 지하부에서 제거되는 오염물질이 96%를 차지했다. 광합성을 하지 않는 밤 동안 오염물질을 흡수한 것은 화분 속 토양에 들어있는 미생물이었다. 따라서 실내에 화초를 길러 오염물질을 제거할 때, 그 공의 절반 가까이는 흙에 돌려야 한다.
식물과 토양생물의 관계도 범상치 않다. 식물은 광합성으로 합성한 영양분을 뿌리를 통해 땅속으로 흘려보낸다. 이 먹이를 먹고 미생물이 번창해 유기물을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영양염으로 바꾸어 놓는다. 식물마다 좋아하는 토양생물이 따로 있고, 이들을 위한 음식을 제공한다. 뿌리는 일방적인 수탈의 통로가 아니라 식물과 토양생물이 공생하는 소통의 광장이다.
침식, 사막화, 염분 증가로 정점에 이른 토양
목초지에서 초식동물에 잎을 뜯긴 식물이 그렇지 않은 식물보다 빨리 자란다는 역설도 토양생물로 설명할 수 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의 연구를 보면, 풀을 뜯긴 식물은 땅속으로 평소보다 많은 당분 등을 분비한다. 땅속 미생물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질소 등 식물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만들어낸다. 그런 다음 식물은 갑자기 뿌리를 통한 ‘비료 살포’를 중단한다. 굶어 죽은 미생물 또한 식물에 소중한 질소비료가 된다. 식물이 종종 잎보다 뿌리를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이다.
토양은 가치가 제대로 알려지기도 전에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전 세계의 토양 중 65%가 침식, 사막화, 염분 증가로 훼손돼 있다. 이 때문에 해마다 1천만 ㏊의 농경지가 버려지고 있으며, 이미 3억㏊ 이상의 농지가 못 쓰게 됐다. ‘기름 정점’에 이어 ‘토양 정점’이란 말도 나오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석유 공급은 아직 정점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토양은 이미 넘어섰다는 점이다.
권 교수는 호미로 텃밭을 맬 때 나는 흙 냄새를 ‘토향’이라며 예찬했다. 그 냄새는 방선균이 내는 지오스민이란 물질이 낸다. 구수한 흙냄새가 더는 나지 않을 때 생명의 기반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http://ecotopia.hani.co.kr/board/view.html?uid=60&cline=1&board_id=ep_blu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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