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콘서트' 저자 팀 하포드 인터뷰
빈둥대는 직장 상사, 왜 당신보다 연봉 많을까
"당신도 앞으로 많이 받을 수 있다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그 목적"
〈Q〉 "저는 30대 초반의 여성인데, 아직 처녀예요. 제가 처녀로 계속 있어야 하나요?"
〈A〉 "경제학자인 앨런 콜린스(Collins)는 자신의 논문 '전략적 처녀성 상실의 경제학'에서 이런 조사 결과를 발표했죠. '여성들이 남자보다 섹스 상대를 고를 때 더욱 신중하다'. 왜냐하면 여성은 아기를 낳으려면 9개월이 걸리지만, 남성은 약 90초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또, 여성의 60%는 사랑하기 때문에 순결을 잃지만, 남성은 35%만이 그렇다고 말하죠. 여성은 순결을 잃는 것을 투자한다(invest)고 생각해 파트너를 고를 때 신중하지만, 남성은 단지 소비한다(consume)고 느낄 뿐이랍니다. 따라서, 당신의 경우라면 경험이 많은 친구들과 인생의 진실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눠보라고 충고하고 싶어요. 모든 투자는 조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니까요."
파이낸셜타임스(FT)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경제학자에게(Dear Economist)'란 작은 상담 코너가 실린다. 독자들의 개인적 고민거리를 경제학 원리를 이용해 풀어주는 코너이다. 딱딱할 것 같은 이 코너가 큰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카운슬러인 팀 하포드(Harford)의 박물적 지식과 재치, 그리고 입담에 크게 의존한다. 경제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그는 독자들의 다소 엉뚱한 질문에도 다양한 경제 원리를 적용해 재치 있고 익살맞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대답해 준다.
‘경제학 콘서트’로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이코노미스트 겸 칼럼니스트인 팀 하포드(Harford)는 런던 북동쪽 변두리의 아담한 2층 집에 살고 있다. 헌칠하고, 귀티 나는 외모와 달리 하포드는 익살과 재치가 넘친다. 그는“사람들이 세계를 이해하기를 원할 뿐 아니라 해결책을 찾고 싶어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서“현재 구상 중인 다음 책에서 주요 이슈에 대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팀 하포드 제공
하포드는 "동네 주차장을 1주일에 1번씩 이용하는데, 좋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 주차 직원에게 팁을 준다면 매번 2달러를 주는 것과 연말에 104달러를 몰아주는 것 중 어떤 게 좋을까요"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한다.
"신경경제학(neuroeconomics) 관점에서 보면 우리 뇌는 두 개를 서로 다른 종류의 보상으로 인식합니다. 즉 주차 직원에게 매번 2달러를 주면 뇌는 별 놀랄 게 없는 것으로 입력시키고, 그걸 당연하다고 인식합니다. 그러다가 팁 주는 걸 잊어버리기라도 하면 주차 직원은 당신이 뭔가 기분이 나쁘다고 생각할 수 있죠.
복권(lottery) 같은 팁도 있어요. 매주 52분의 1 확률로 104달러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죠. 예컨대, 바닥에 뒤집어놓은 52장의 카드패 중 스페이드 에이스를 골라내면 104달러를 주겠다고 하는 식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도박을 즐기는 성향이 있죠.
이상적인 팁은 안정성과 놀라움의 효과를 잘 조합하는 겁니다. 매주 1달러를 주면서 매달 5달러를 추가로 주면 어떨까요. 그러면 당신의 행동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극대화시켜 줄 겁니다."
이 위트 넘치는 칼럼의 저자 팀 하포드의 나이는 올해 36세. 하지만 그는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명성을 얻은 이코노미스트이자 칼럼니스트 중 한 사람이다.
2006년에 출간한 첫 저서 '경제학 콘서트(원제:The undercover economist·탐정 같은 경제학자라는 의미)'는 전 세계에서 30개 언어로 번역돼 수백만부가 팔렸고, 한국에서도 35만부 이상 팔렸다. 200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머스 셸링(Schelling) 미 메릴랜드대 교수는 "경제학 훈련을 받은 경제학자들도 자신이 아는지조차 몰랐던 것을 깨닫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책"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나온 그의 두 번째 책 '경제학 콘서트 2(원제:The Logic of Life)'도 영국 사회과학 교양서적 중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1년 이상 지키고 있으며, 그 해 FT가 선정한 베스트 비즈니스북 중 하나로 선정됐다. '경제학 콘서트 1, 2'는 지난해 한국 국립중앙도서관의 사회과학 도서 대여 횟수 1위를 기록했다.
그런 그를 만나러 기자는 파리에서 열차(유로스타)와 택시를 번갈아 가며 6시간 만에 찾아갔다. "자, 다 왔습니다. 건너편에 보이는 집이 4번지입니다." 하지만 택시 기사의 말에 눈이 의심스러웠다. "런던에 ○○거리는 하나밖에 없는 게 확실하죠?" 거듭 확인한 뒤 택시에서 내린 기자는 한동안 서성거렸다. 1825년에 건축됐다고 써 있는 2층 집은 너무 낡았고, 화단을 둘러싼 나무 담장은 거의 쓰러질 지경이고 도어벨조차도 없었다. '제대로 찾아온 게 맞나?' 걱정하며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옆집과의 사이에 난 초록색 쪽문을 열고 헌칠한 키의 30대 청년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의 집은 옆집 뒤쪽에 있었던 것. 핑크색 반팔 티셔츠 차림의 그는 동네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귀티가 났다.
10여평 남짓한 정원을 품고 있는 팀 하포드의 2층 집은 작지만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9년 전에 이사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집이 작지요? 1층은 응접실 겸 부엌이고, 2층에 침실과 서재가 있습니다. 네 식구가 살기엔 이 정도 공간이면 충분하죠." 설명을 듣다 보니 그가 자신의 책에서 줄곧 강조하고 있는 '최소의 비용, 최대의 효용' 원칙에 걸맞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업 저술가로서는 조용하고 물가도 싼, 변두리 동네가 최선일 수 있다.
그는 거대한 경제 현상은 물론 사람들의 아주 사소한 일상조차 두 가지 경제 원리로 명쾌하게 풀어낸다. 바로 '합리적 선택'과 '인센티브'다. 심지어 그는 사랑에도 비합리적인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합리적 선택으로 생활 속의 미스터리들을 설명할 수 있는 세상, 바로 그런 곳이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세상이라고 말한다.
그의 칼럼 제목인‘The Undercover Economist’(탐정 같은 경제학자)처럼 팀 하포드는 하찮은 일상에도 날카로운 시선을 들이대 그 속에 숨겨진 경제원리를 찾아낸다. /팀 하포드 제공
―본인의 경우는 어떤가요?
"아, 저길 보세요. 완벽한 대답이 걸어내려 오고 있네요." 뒤를 돌아보니 마침 그의 부인이 "학교에 딸을 데리러 갈 시간이 됐다"면서 2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대단한 미인이었다.
하포드는 부인에게 질문했다. "김 기자님이 아름다운 여자가 평범한 남자와 결혼한다는 내 주장에 대해 질문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그러자 부인은 "그럼 평범한 여성은 누구랑 결혼해?"라고 되물었고 모두가 크게 웃었다.
하포드는 아름다운 여성이 평범한 남자와 결혼하는 여러 가지 이유를 설명한다. 가장 대표적 이유는 이렇다.
생물학적 진화 과정에서 여자는 부유하고 권력을 지닌 남자를 배우자로 선호하게 됐다. 부(富)와 권력이야말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가족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방패막이가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남자는 도시에 많다. 따라서 여자들은 남자를 찾아 도시로 가고, 그러다 보니 도시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아진다(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47개국 중 44개국에서 그런 현상이 목격됐다).
문제는 남녀 성비(性比)에 조금만 불균형이 일어나도, 즉 남자 수가 여자 수에 비해 단 한 명만 부족해도 여자들의 교섭력이 극도로 약해진다는 점이다. 결국 여성은 눈높이를 낮추게 된다고 하포드는 설명한다.
―당신이 책에서 주장한 대로 '인간이 합리적 동물'이라면, 왜 이런 경제위기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겁니까?
"저는 이번 위기가 개인의 비합리적 행위의 결과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주택 시장의 거품 형성에 개인의 비합리성이 다소 개입되긴 했지만, 위기의 주요인은 불량한 경제 시스템 탓입니다."
―알기 쉽게 예를 든다면?
"월트디즈니의 전 CEO였던 마이클 아이스너(Eisner)는 퇴임 전까지 13년 동안 연봉으로 무려 8억달러를 챙겼습니다. 하지만, 디즈니의 투자자들은 그 기간 미국 국채(國債)에 투자하는 것보다도 못한 수익을 올렸습니다. 이런 급여체계는 분명 불합리하지만, 피고용인은 조직 내 경쟁 논리에 휘말려 개선을 요구하지 못합니다. 소액주주들도 지분이 너무 작아 CEO의 급여 체계를 바꿀만한 강력한 동기(incentive)가 없습니다. 결국 많은 사람이 저마다 자기 입장에서는 합리적으로 대응하지만, 불합리한 CEO 급여 체계는 개선되지 않고 있지요. 결국 위기의 책임은 모두에게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점입니다."
이 대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빈둥대는 직장 상사가 나보다 연봉이 많은 이유'에 대한 책에서의 그의 설명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주로 미국의) 직장에서는 보통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연봉이 급격히 늘어난다. 낮은 직급의 경우 더 높은 직급으로 승진할 기회가 여러 번 있기 때문에 연봉이 높지 않더라도 승진하고 싶다는 강한 동기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높은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남아 있는 승진의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에, 승진이라는 인센티브만으로 성과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따라서 회사는 높은 직급으로 승진할 때마다 거액의 연봉 인상을 인센티브로 제시하게 된다고 하포드는 설명한다.
결국 사장의 높은 임금은 사장 자신에게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하기보다는 부사장에게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이고, 이 점에서 사장에게 거액의 연봉을 지불한 주주들의 결정은 그 자체적으로는 합리적일 수 있다고 하포드는 부연한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이번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는데 그들을 위해 어떤 변명을 할 수 있을까요?
"사실 경제학자들은 미래를 예견하는데 서툽니다. 요즘 세계는 매우 복잡하게 맞물려 돌아가는데, 경제학자들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일 뿐이지요. 유명한 심리학자 필립 테트록(Tetlock)은 정치와 경제 각 분야 전문가를 남녀노소, 좌우 이념 스펙트럼을 망라해 선별해 이들의 각종 예측이 맞았나를 관찰했지요. 결과는 어떤 전문가도 미래에 대해 정확히 예견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미래에 대한 예견을 내놓지만, 나는 이런 경제학자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번 위기에 앞서 몇몇 경제학자들은 주택시장의 거품, 세계 경제의 불균형, 금융시스템의 문제 등 많은 문제점을 꾸준히 지적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부분적인 문제점들이 결국 총체적으로 어떤 결과로 귀결될지 '큰 그림'을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불황기 기업, 가격 차별화 전략 활용할 만"
―불황 때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가요?
"과거의 불황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사람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불황의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영국의 과거 경험으로 보면, 불황으로 가난이 더 깊어진 사람도 많지만, 약 7분의 1에 해당하는 소비자는 불황 뒤에 오히려 소득이 훨씬 더 늘어났어요. 따라서 불황기에 기업 입장에선 비용을 절감하고 가격을 내리는 식으로 우선 대응하겠지만, 미래를 위해 더 비싼 고급 상품을 개발하는 노력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점과 관련해 제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가격 표적화(targeting)' 전략(거의 비슷한 상품을 고객별로 다른 가격을 받고 파는 것·경제학에서는 흔히 가격 차별화 전략이라고 한다)을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하포드는 책을 통해 스타벅스와 코스타(Costa·영국의 커피 체인점)의 가격 표적화 전략을 설명했다.
스타벅스의 고객은 여러 부류가 있다. 어떤 사람은 가격에 민감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 가격에 덜 민감한 고객에게는 높은 가격을 매겨도 된다. 그런데 그런 고객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스타벅스가 고안한 방법은 여러 종류의 커피를 내놓는 것이다. 원가는 1~2센트의 미미한 차이밖에 없지만,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가격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고객은 스스로 호사스러운 선택을 할 것이다. 스타벅스는 이 방법을 통해 가격에 민감한 고객과 덜 민감한 고객 모두를 만족시킨다.
다른 전략도 있다. 가격에 덜 민감한 고객을 위해 소위 '공정(公正) 무역' 마크가 찍힌 커피를 판매하는 것이다. 코스타가 대표적이었다. 이 커피는 가난한 나라의 커피 농부들에게 좋은 가격을 지불할 것을 약속하는 대신 값이 좀 비싸다. 그래도 농부를 돕는다는 명분이 있었기에 가격에 덜 민감한 고객은 기꺼이 돈을 더 냈다. 문제는 비싼 공정 무역 커피 값은 일부 커피 농부들에게도 가겠지만, 더 많은 부분이 커피 판매점의 수입이 된다는 사실이다.
―공정무역 커피에 관해 분석한 일로 커피회사로부터 항의를 받지 않았나요?
"저의 책이 출간된 뒤 한 커피 체인점에서 마케팅 전략을 바꾸었습니다. 비싸게 받던 공정 무역 커피 가격을 일반 커피 수준으로 내렸지요."
―공익(公益)을 위해 좋은 일을 하셨네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어느 커피숍을 가도 일반 커피와 동일한 가격의 공정 무역(fair trade) 커피를 즐길 수 있으니까요."
―기업이 가격 표적화 전략을 편다면, 개인들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은가요?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대기업들은 소비자 개인별로도 가격 표적화 전략을 구사합니다. 개별 고객들에 대한 기록을 근거로 서로 다른 가격을 산정해 제시하곤 하죠. 이를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 고객 컴퓨터에 '쿠키'라고 불리는 추적 수단을 심어 놓습니다. 하지만, 개인 역시 저항할 수단이 있습니다.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품질 대비 가격이 가장 싼 상품을 선택한다든가 하는 것이지요."
―경제 위기 이후 가장 유망한 투자 수단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좋은 투자자가 되려면 언제, 어디에 투자하는 것이 최선인지 결코 알 수 없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는 투자자가 범하기 쉬운 최악의 행동 유형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펀드매니저를 찾아가 수동적인 투자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펀드매니저에게는 다수의 시각에 동조하게 만드는 편향된 인센티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다수와 다른 시각을 취해서 성공할 경우에는 소수의 고객을 얻는데 그치지만, 실패하면 일자리에서 쫓겨난다. 따라서 그들로선 늘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말이다.
둘째는 시장 가격이 최고일 때 사서 최하일 때 파는 행위다. 최악의 선택인데, 사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이렇게 한다.
따라서 하포드는 언제, 어디에 투자할지 선택할만한 능력이 없다면 정기적으로, 다양한 투자 대상에 조금씩 분산 투자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충고했다(적립식펀드로 분산투자하는 것과 비슷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방법을 택하면 워런 버핏(Buffett)이 될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펀드매니저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보다는 나은 결과를 얻을 겁니다."
―당신은 책에서 현실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게임이론의 유용성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현실 문제에 게임이론을 적용하는 데는 변수가 많아 실패 확률도 높아 보입니다. 게임이론을 적용한 경제 정책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정부의 이동통신 주파수 경매 같은 게 대표적으로 게임이론을 적용한 정책인데, 경매 시스템 설계를 정교하게 잘해야 합니다. 대학생이나 학자를 모의 경매 참가자로 참여시켜 미리 실험을 해 본다거나, 많은 변수를 적용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해본다든가 해서 문제점을 미리 파악해 차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가급적 많은 경쟁자들이 참여하도록 유도해 경쟁률을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요."
■ 정부, 시장 개입보다 투명성 높이는 게 최선
그는 FT에 자신의 첫 번째 책 제목과 같은 'The undercover economist'라는 칼럼을 쓰고 있다. 그는 최근의 칼럼에서 대학 시절 자신이 거시경제학에서 결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으며, 대신 미시경제학에 집중했다고 자백했다. 그러면서 그는 거시경제학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거시경제학이 문제를 전망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심지어 올바른 의문조차 제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세계를 이해하기를 원할 뿐 아니라 해결책을 찾고 싶어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서 "현재 구상 중인 다음 책에서 주요 이슈에 대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다음 책에서 다룰 주제는 크게 다섯 가지입니다. 최빈국(最貧國)의 개발 전략, 환경 문제 해법, 금융 시스템 개혁, 첨단 신(新)기술 개발, 테러리즘과의 전쟁이 그것입니다. 저는 이 다섯 가지 이슈에 대해 경제 원칙을 적용해 대안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시장의 과도한 자율성이 위기를 잉태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더 많은 규제가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가장 좋은 규제는 (금융회사의) 투명성을 촉진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 어떤 문제가 초래되는지는 우리가 이미 지켜보고 있습니다. 미국의 AIG 사태가 좋은 사례지요. AIG 문제에 미국 정부가 개입한 후 미국의 모든 정치 시스템이 AIG 사태와 관련되어 버렸습니다. 민간 기업에 정부나 정치가들이 갑자기 개입하게 되면 양자 간에 공평한 권리의 배분이 매우 어려워집니다."
―AIG의 거액 보너스 파문으로 미국 정부가 50억달러 이상 정부 지원을 받은 기업 임직원의 보너스에 90%까지 세금을 물리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계약을 존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위기를 자초한 장본인들이 거액의 보너스를 챙겼다는 사실에 국민들이 분노한다는 사실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벌금형 세금은 이런 계약을 무시하는 것이지요. 정부가 개입하는 해법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는 이런 문제의 해결책으로는 비합리적인 보너스를 수령한 임원들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즉 그런 고액 보너스를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에 보너스를 포기하고 해고를 면하거나, 아니면 보너스를 받는 대신 해고당하거나 양자택일(兩者擇一)을 요구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 "책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고치고 고치길 수없이 반복"
―당신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경제 문제를 쉬운 말로 명료하게 설명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습니다. 비결이 뭔가요?
"그렇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글을 쓰고자 최대한 노력합니다. 결국 좋은 글을 쓰는 것은 연습량이 좌우하는 것 같아요. 연습을 많이 할수록 더 나은 글을 쓰게 되지요. 첫 번째 책(경제학 콘서트)은 7년 전 2층 방에 처박혀 쓴 책인데,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고치길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당신은 책에서 심리학이나 마케팅 분야 최신 연구 결과를 다양하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데 필요한 그런 내용을 어떻게 수집합니까?
"우선 저는 수많은 경제 블로그를 읽어요. 다양한 경제 블로그를 통해서 흥미 있는 아이디어를 얻지요. 또 흥미로운 주제를 발견할 때마다 저자에게 연락해서 의견을 교환하거나 토론을 통해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다행히 많은 경제학자들이 FT 칼럼 등을 통해 저의 존재를 알고 있어 기꺼이 토론에 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NBER(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같은 학술 기관에서 발행하는 전문 학술지를 탐독합니다. 매주 학술지를 발송해 주거나 메일로 보내줍니다. 매주 30~40종의 학술지를 받는 셈이지요."
―그 많은 논문을 다 읽는가요?
"모두 다 읽는 것은 아닙니다. 논문 내용 요약본을 본 뒤 관심이 가는 내용만 다 읽어요. 또 한 달에 4~5개의 칼럼을 쓰는 과정에서 논리 구성을 위해 많은 텍스트를 읽고 생각도 많이 합니다."
―당신의 이력을 보면 대학 교수로도 성공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왜 전업 저술가로 살고 있습니까?
"대학에서 2년간 특수 경매와 관련한 논문을 준비한 적이 있는데, 너무 세부적인 내용에 빠져들다 보니 '학자로 연구하는 것이 과연 즐거운 일인가'를 자문(自問)하게 됐습니다. 저는 경제에 대한 책을 쓰는 게 저의 적성에 더 맞다는 걸 깨달았어요. 다양한 아이디어를 글로 표현하는 일이 저에겐 가장 즐거운 일입니다."
―가장 존경하는 경제학자는 누구입니까?
"오늘 받은 질문 중 가장 어려운 질문이네요. 한 사람만 꼽으라면 토마스 셸링(Thomas Schelling)을 꼽고 싶습니다. 그는 전후(戰後) 유럽의 복구에 간여했고, 냉전(冷戰) 기간에 케네디 대통령(John F. Kennedy)의 경제 자문역을 했으며, 현재 많은 경제학자들이 응용하는 '갈등과 협상에 관한 게임이론'(게임이론에 기초해 미국과 소련간 핵무기 개발 경쟁 등 국제 분쟁의 해법을 제시한 이론)을 창안했습니다. 연세가 90에 가까운데, 아직도 왕성한 호기심으로 정력적인 연구 활동을 하고 있어 매우 존경하고 있습니다."
―당신 책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인 사실을 알고 있나요?
"출판사 직원이 판매 부수 통계를 보여주기에 대수롭지 않게 봤는데, 나중에 '0'이 2~3개나 더 붙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한국 독자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에게 한국에서 공수된 '경제학 콘서트'를 건넸더니, 그는 "한글판은 처음 본다"며 "땡큐"를 연발했다. 기자는 그 책을 선물로 줬고, 그는 영문판에 자신의 사인을 담아 선물했다.
◆ 팀 하포드는 누구
옥스퍼드대 출신 FT칼럼니스트₩BBC 진행자… 대중 경제학계 '스타'
팀 하포드(Tim Harford)는 1973년생으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민간 기업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으나, 2003년 영국의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FT)에서 칼럼니스트가 되는 기회를 잡았다.
FT는 전설적인 명(名) 칼럼니스트 피터 마틴(2002년 작고)을 기려, 매년 경제분야 칼럼니스트가 될 소질이 있는 젊은 필진을 발굴해 3개월짜리 인턴십 기회를 제공하는데, 팀 하포드는 바로 이 과정을 통해 저널리스트로 변신했다.
'글쟁이'로서의 소질을 발견한 그는 그 후 세계은행 산하 국제금융공사(IFC)에서 경제학자들의 집필 자문역으로 일한 뒤, 2006년 FT로 복귀해 정식 칼럼니스트가 됐다. 그는 FT의 고정 칼럼 'The Undercover Economist(탐정 같은 경제학자)'를 통해 일상생활 이면에 녹아 있는 경제 원리를 알기 쉽게 풀어줌으로써, 일반 대중들이 즐겁게 경제학 이론을 접하고 배우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그는 2006년 자신의 칼럼과 같은 이름의 'The Undercover Economist'라는 책을 내놓은 데 이어 지난해 'The Logic of Life'를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음으로써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됐다. 그는 또 매주 토요일 FT에 'Dear Economist'라는 상담 코너를 연재해 많은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다. 독자들이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고민거리에 대해 경제 이론에 기초해 해법을 제시하는 코너이다. 그는 영국 BBC 방송의 교양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런던=김홍수 특파원 hongsu@chosun.com
유하룡 기자 you11@chosun.com)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4/24/20090424010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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