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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만사 ▣/이런일 저런말

‘한국계 10대골퍼 여자 타이거우즈 극찬’ WSJ 대서특필

by 세월따라1 2009. 5. 4.

 

미 여자프로골프(LPGA)의 한국계 혼혈선수 비키 허스트(18)가 ‘여자 타이거 우즈’로 주목받고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WSJ)은 주말판인 2일(현지시간) 스포츠면 톱기사로 LPGA의 떠오르는 별 비키 허스트를 대대적으로 소개했다. WSJ는 ‘여자 타이거의 조용한 포효’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많은 골프 전문가들은 올해 18세의 루키 비키 허스트가 미래의 위대한 골퍼가 될 것으로 믿고 있다“면서 타이거 우즈와의 공통점을 비교해 눈길을 끌었다.

저널은 플로리다 팜비치의 미라솔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토너먼트에서 허스트가 티샷하는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두 다리를 땅에 심듯 단단히 자세를 취한 후 심호흡을 하면서 천천히 클리블랜드 드라이버를 감아올렸다. 채찍을 휘두르듯 내려친 클럽이 ´홱!’소리를 내자 총알처럼 볼은 날아갔다. 비거리는 무려 280야드.‘

허스트와 우즈는 여러가지 면에서 닮은꼴이다. 우즈의 아버지 얼 우즈는 그린베레 출신으로 계급이 중령이었다. 허스트의 아버지 조 허스트는 공군 대령으로 26년 간 복무했다.

우즈의 어머니 컬티다는 태국인이고 허스트의 어머니 코코는 한국인이다. 우즈의 아버지는 아내를 동남아시아 부대 근무 중에 만났고 허스트의 아버지도 주한미군 복무 중 결혼에 골인했다.

허스트와 우즈는 자신의 가장 열렬한 후원자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여의는 아픔마저 빼닮았다. 우즈는 골프 인생의 절정을 구가하기 시작한 2006년 6월 아버지를 암으로 잃었다. 허스트는 그보다 두 달 앞선 2006년 4월에 뇌출혈로 사망했다. 그녀의 나이 15세의 일이었다. 올랜도에서 LPGA 예선을 앞두고 있던 허스트가 대회를 포기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우즈와 허스트의 어머니는 각기 자식의 뒷바라지에 헌신했다. 우즈의 어머니는 골프 천재 아들을 데리고 대회에 나섰고 남편을 내세운 채 자신은 무대의 뒤편에 늘 물러서 있었다. 그러나 우즈의 주니어 시절 라이벌 테드 퍼디는 “우즈의 어머니가 조용히 뒷바라지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중요한 순간 단호한 결정을 내렸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타냈다”며 우즈의 골프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했다.

허스트의 어머니도 비슷한 역할을 했다. 엄격한 도덕률을 내세우고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했다. 필드에선 코치로서 딸의 플레이를 지켜보며 격려의 말을 보내곤 했다. 허스트의 아버지는 느긋하고 다정다감한 성품으로 골프에 대해 자잘한 주문은 하지 않았다.

허스트는 “아빠도 골프를 사랑했다. 하지만 골프를 깊숙이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르쳐주는 일은 없었고 그저 격려만 해줬다”고 털어놓았다. 허스트의 할아버지도 골프 매니아였다. 93세에 나인홀을 거뜬히 소화할만큼 골프를 즐긴 할아버지는 심지어 다음날 아침 골프 약속을 잡아놓고 주무시다가 편안히 돌아가셨을 정도였다.

타이거 우즈가 10개월이 됐을 때 장난감 골프채로 첫 스윙을 보여줬다면 허스트는 태어날 때부터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1990년 6월 만삭의 몸으로 남편, 두 명의 남성과 동반한 가운데 매릴랜드의 앤드류스 공군기지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했다. 16번 홀을 도는 순간 그만 양수가 터졌다. 남편은 이날 가장 멋진 샷을 날리고 5피트짜리 버디 퍼팅을 앞뒀지만 그길로 병원으로 직행해야 했다.

허스트의 어머니는 “두 시간만에 딸이 태어났다, 그때까지 난 세 남자를 이기고 있었다”고 짐짓 아쉬워 했다. 딸이 일곱살이 됐을 때 부모는 플로리다 북동부의 월드골프빌리지에서 열린 삼성토너먼트에 데리고 갔다.

세계적인 선수들의 자료가 전시된 명예의 전당이 있는 이곳에서 허스트는 골프에 매료됐다. “난생 처음 세계적인 선수들이 환호하는 팬들과 언론의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플레이하는 것을 보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첫 우승을 한 것은 열한살 때였다. 허스트는 골프를 하면서 어른들의 주머니를 턴 적도 있다. 호주 멜버른의 선트리 컨트리클럽에서의 일이다. 이 클럽의 데니스 댈만 사장은 “홀에서 나를 이기면 1달러, 버디를 하면 2달러, 이글을 하면 5달러를 주기로 했는데 다 털렸다”면서 “그렇게 부드럽게 스윙하고 템포를 조절하는 플레이는 처음 봤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5세가 됐을 때 허스트는 2006년 US오픈 예선전에 출전했지만 78타와 82타를 마크, 10타차로 컷통과에 실패했다. 그때 허스트는 프로선수들을 능가하는 장타를 날렸지만 코스를 세심하게 분석하는 노련미는 없었다.

이번 미라솔 토너먼트 첫날 경기에서 허스트는 첫 나인홀의 6개 홀에서 버디를 했다. 바바라 랜더 대회장은 “마치 어린 아니카 소렌스탐을 보는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결국 허스트는 이날 6언더 66타로 끝냈지만 어머니는 만족한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딸이 10언더는 할 수 있었다면서 “너는 이 코스를 훤하게 읽어야만 해”하고 주문했다.

이틀째와 사흘째 허스트는 각각 71타와 69타로 2위를 5타차로 제치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경기 내내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는 허스트는 “우승 소감을 말할 때가 정말 긴장됐다”고 10대다운 천진함을 보였다.



【뉴욕=뉴시스】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5030109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2부투어인 퓨쳐스투어에서 2008년 상금왕을 차지한 비키 허스트(오른쪽)가 어머니 오은숙씨(가운데), 언니 켈리(왼쪽)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