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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만사 ▣/이런일 저런말

조선 최대 스캔들 양녕-어리 불륜, 실제 역사에선... [뉴스엔]

by 세월따라1 2008. 4. 28.

 

 [뉴스엔 조은영 기자]

KBS 2TV 대하사극 '대왕세종'에서 세자 양녕(박상민)의 폐위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 세자 양녕이 화통군을 함경도 경성땅에 보낸 이유가 북방 정벌을 위한 사전작업이었다는 사실을 간파한 태종(김영철)이 경차관으로 영의정 유정현을 급파하며 사태가 악화일로를 달리고 있다. 이와 함께 역사적으로 양녕의 세자 폐위에 도화선이 됐던 어리(오연서)와의 떠들썩한 스캔들도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왕세종’에서 곽선의 첩 어리는 매우 미스터리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고려황실잔존세력의 일원으로 그들이 꿈꾸었던 혁명을 위해 나이 많은 곽선의 첩이 되는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녀가 곽선의 첩이 돼 고려황실잔존세력의 혁명을 위해 어떤 일들을 행했는지는 그려지지 않았다.

또 고려황실잔존세력이 모두 제거된 이후 홀로 남겨진 어리가 세자 양녕의 곁을 지키며 아슬아슬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것, 충녕(김상경)의 장인 심온을 찾아가 세자 양녕의 스캔들을 놓고 거래를 제안한 것이 과연 무엇을 얻기 위함인지 아직까진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사실 어리가 고려황실잔존세력의 일원이라는 것은 드라마 속 상상에 불과하다. 양녕의 세자 폐위를 보다 극적으로 그려내기 위한 포석으로 보여진다.

실제 역사에서 양녕은 폐세자가 된 후 숨을 거두기까지 수많은 기행을 일삼았는데 가장 문제가 된 것이 바로 복잡한 여자관계였다. 그중 상왕의 시첩 초궁장과의 스캔들은 그녀의 신분이 기생이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사건을 무마시키고 눈 감아 줄 수 있는 요소가 있었지만 곽선의 첩 어리와의 스캔들은 세자의 신분으로 감행된 유부녀와의 간통이라는 점에서 왕실의 자존심을 땅에 떨어뜨리는 큰 죄였다.

당시 지중추부사 곽선의 첩이었던 어리는 빼어난 미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양녕은 어리가 서울 친척집에 오자 좋은 기회라고 여겨 그 친척을 통해 선물을 보내지만 어리는 이미 남의 부인인지라 그 선물을 받을 수 없다며 돌려보냈다. 몸과 마음이 온통 달아오른 양녕은 곽선의 양자를 위협해 다짜고짜로 어리를 납치해 동궁으로 데리고 돌아왔다. 이 소식을 들은 태종에 의해 어리는 무사방면됐지만 양녕에게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어리에 대한 마음을 접을 길 없었던 양녕은 대하사극 ‘대왕세종’에서 그려진 것처럼 장인 김한로의 집에 어리를 숨겨두고 태종 몰래 그녀를 만나 아이까지 낳게 한다.

때마침 태종이 가장 귀하게 여겼던 막내아들 성녕대군이 죽자 큰 슬픔에 잠겨있던 차에 양녕의 이같은 기행이 다시 한번 태종의 귀에 들어가면서 세자 폐위란 초유의 사태로 이어진다. 처음 태종은 양녕의 장인 김한로를 나주로 유배했다 사사하고 세자를 두둔하던 영의정 황희(黃喜)는 남원으로 귀양 보내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하려 했다. 하지만 양녕이 태종에게 ‘부왕께서는 많은 후궁을 두고, 또 여자들을 무시로 궁에 출입시키면서 왜 세자궁에 여자를 들이는 것은 금하십니까?’라는 글을 올리는 등 뉘우침 없이 자신의 죄를 정당화시키려하자 세자빈은 친정으로 내쫓았으며, 동궁의 문지기와 내시들은 모조리 목을 치고 양녕의 세자 폐위를 단행한다.

세자에서 폐위된 양녕은 경기도 광주로, 다시 이천으로 유배되지만 어리를 만나게 해달라는 청이 거부당하자 지키는 군사들 몰래 담을 타넘어 도망치는 일이 발생했다. 군졸들이 어리의 집을 샅샅이 뒤졌으나 찾지 못했고, 그 와중에 어리는 강압에 못이겨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비관하며 스스로 목매 죽어버렸다. 세자 폐위로까지 치달은 조선 최대의 스캔들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조은영 helloey@news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