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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만사 ▣/이런일 저런말

굿바이 동대문운동장

by 세월따라1 2008. 5. 14.

14일부터 동대문 운동장 본격 철거

노컷뉴스 영상취재팀 이창준 기자

 


 

14일 오후 본격적인 철거를 앞둔 서울 동대문운동장의 안과 밖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운동장 안에서는 철거를 알리는 '굿바이 동대문운동장' 행사가 열리고 밖에서는 주변 노점상인 800여명이 철거를 반대하며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를 연것.

이날 행사에는 오세훈 서울시장,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 홍명보 국가대표 수석코치 등과 지역주민들이 참석해 82년의 역사를 가진 동대문운동장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철거를 알리는 세레모니인 '굿바이 슛'행사와 함께 동대문운동장의 상징물인 전광판 시계가 크레인에 의해 철거됐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서정원은 "어릴때부터 힘들게 운동을 했던 장소인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된다고 생각하니 착잡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홍명보 코치도 "축구인들의 소중한 장소인 동대문운동장의 철거를 축구인의 한사람으로서 안타깝다게 생각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오세훈 시장은 "동대문운동장은 낡은 이미지를 벗고 새롭게 태어날 것"이라며 "패션과 디자인의 중심이 되는 출발점에 서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동대문운동장은 30일까지 철거작업을 끝내고 9월 지하굴토공사에 들어가 2년 뒤인 2010년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와 파크'로 완공될 예정이다.



gonddle@cbs.co.kr


 

동대문운동장에는 3만 5,000명 수용규모의 축구장과 야구장, 클레이코트의 테니스장, 실외배구장 및 옥외수영장이 있었다.

 

건립시기는 1925년 5월 26일 공사를 시작하여 1926년 3월에 준공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종합운동장이었다.

 

당시 동대문운동장은 ‘경성운동장’이었고, 경성부 토목기사 오모리의 설계로 경성부가 총독부의 지원을 받아 2만2700평에 15만5천원을 들여 지었다.

 

1945년 8·15해방이 되면서 이름이 ‘서울운동장’으로 변경되었고, 1962년 보수공사를 하여 육상경기장·야구장·수영장·배구장·연식정구장 등을 만들었다.

 

이후 잠실종합운동장이 건립되어 한국의 대표적 종합운동장의 위치를 넘겨주게 되었고, 명칭도 서울운동장에서 ‘동대문운동장’으로 바뀌게 되었다.

 

동대문운동장에서는 많은 축구경기와 국제대회가 개최되었는데, 1930년 11월28일 경평축구 2회 대회가 열려‘한국 축구의 대부’김용식(1910~85) 선생이 최고의 축구스타로 떠오랐다.

 

또한 박스컵(이후 대통령배 축구대회와 코리아컵으로 계승되었으나 1999년 폐지되었다.)과 프로축구의 개막전이 개최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