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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만사 ▣/이런일 저런말

부인 김미순씨가 말하는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by 세월따라1 2009. 3. 31.

1990년 10월 19일. 이봉주(39·삼성전자)는 전국체전에서 2시간19분15초의 기록으로 생애 첫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로부터 20년. 지난달 15일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16분46초의 기록으로 생애 40번째 레이스를 마쳤다. 이봉주는 대회 직후 부인 김미순(39)씨, 두 아들 우석(7)·승진(5)군과 여행을 떠났다. 인터뷰를 위해 전날 올라온 그의 가족을 26일 경기도 화성 아파트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준비하던 이봉주에게 “오늘은 이 선수가 아니라 부인”이라고 하자 이봉주가 겸연쩍게 웃으며 김씨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100점 만점에 100점

부인 김씨가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남편이 유명인이라 좋겠다”는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남의 속도 모르고’라고 속말을 했다. 김씨에게 지난 15년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평범한 남편이라면’이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훈련과 시합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1년에 함께 지내는 시간은 3개월 정도예요. 애들은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다른 집 아빠를 부러워하죠. 12월에 나가면 이듬해 3월에 돌아오는 겨울 전지훈련이 제일 힘들어요. 그래서 애들이 좀 큰 뒤에는 아예 우리가 전지훈련지로 찾아갔어요. 남편이 은퇴를 한다니까 너무 좋죠. 우리도 가족 같은 가족으로 지낼 수 있을 테니까요.”

이봉주가 휴가를 받으면 그때부터 김씨의 휴가다. 집에 돌아온 이봉주는 아이들과 붙어 산다. 아이들 세수, 옷 입히기와 밥 먹이기, 놀아 주기. 죄다 이봉주 몫이다. “평소 집에 없어 그렇지 남편에게 점수를 준다면 100점 만점에 100점이죠.” 이봉주는 집에서 살림꾼이다. 김씨가 말도 꺼내기 전에 청소·설거지 등을 후다닥 해버린다.

어른들께 살갑기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한번은 가족이 삼척(김씨 친정)에 갔는데 다음 날 아침 남편이 사라졌어요. 좀 있다 최신형 전화기를 사온 거예요. 전화를 설치하더니 친정 엄마한테 ‘고장 난 전화기를 쓰면 위험해요’라는 거예요. 애들이 고장 낸 전화기를 친정 부모님이 테이프로 대충 붙여 썼거든요.” 김씨 칭찬은 이어졌다. “대회든 훈련이든 나가면 일주일에 한번씩은 처가에 전화를 해 안부를 물어요. 친정 부모님도 ‘저런 남편 없다’고 하죠.”

#힘들어하는 남편 보면 힘들어

김씨는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는 게 가장 힘든 일”이라고 했다. 올림픽은 준비보다 끝난 뒤가 더 힘들었다. 이봉주는 96년 애틀랜타부터 지난해 베이징까지 네 번의 올림픽에 출전했다. 이봉주는 베이징 D-100 인터뷰에서 “96년 올림픽 은메달의 아쉬움 때문에 지금껏 뛰고 있다”고 얘기했다. 김씨도 같은 생각이다. “96년은 아쉬움이 정말 많았어요. 3초 차로 은메달이잖아요. 하지만 그 때문에 4년 뒤를 기약하면서 계속 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2000년 시드니에서 이봉주는 레이스 도중 다른 선수에 걸려 넘어지면서 24위에 머물렀다. “시드니에서 돌아온 뒤 남편이 한동안 자괴감에 시달렸어요.” 4년이 또 흘렀다. 2004년 아테네 때도 금메달 후보 소리를 들었다. “아테네 때 남편이 서른다섯 살, 입상은커녕 뛰는 게 가능할까 싶었어요. 그런데 저는 아무런 도움이 못됐어요. 둘째를 임신 중이었고 예민했거든요. 마주 앉아도 아무 말도 못했어요.” 14위의 성적으로 귀국한 이봉주는 김씨를 붙잡고 “나는 왜 올림픽에서 안 될까. 어쩌면 이렇게 운이 따르지 않을까”라고 한탄했다. 지난해에는 되레 담담했다. “남편은 가기 전부터 ‘올림픽 네 번 나간 걸로 만족해야지. 이젠 지구력 싸움도, 순위 싸움도 아니야. 이젠 어려워’라고 했어요.”

가장 기뻤던 순간을 김씨는 “2001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이라고 대답했다. 각종 기념품을 보관한 방에 당시 우승 소식이 담긴 ‘보스턴 글로브’지 1면이 눈에 띄었다. 제목이 ‘한국의 이봉주, 케냐의 10년 우승을 끝냈다’다. 

#마라톤보다 스케이트가 좋은 아이

‘국민 마라토너’ 남편 때문에 많이 받는 질문이 “아이도 마라톤을 시킬거냐”다. 김씨는 “2시간 넘게 뛰어야 하는 걸 어떻게 아이에게 시키느냐”고 반문했다. “요즘은 운동시킨다면 우선 골프를 생각하고 그 다음이 야구·축구·농구 같은 구기가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남편이 은퇴하면 지도자 길을 걸을 텐데 마라톤을 하겠다는 아이들이 없으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는다. 평생 규율 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그 속에 밀어 넣고 싶지 않아서다. “큰애가 스케이트를 좋아해 일대일 레슨을 붙여 줬어요. 이봉주 아이가 스케이트를 타니까 사람들은 ‘스케이트 선수 시키려나 봐요’라고들 해요. 그건 아니고 지난해에 축구교실에 보냈는데 공은 안 차고 개미만 잡는 거예요. 그날로 축구를 접었죠. 저나 남편이나 애들이 원하는 걸 하길 바라요.” 김씨는 큰애를 보면 마음이 덜컥한다. 다리가 딴딴한 게 영락없이 남편을 닮았다. 달리기도 잘할 것 같다.

#액수는 비밀… 부족함 없을 정도

육상을 ‘배고픈 운동’이라고 한다. 올림픽 은메달에 아시안게임 2연패, 한국신기록까지 보유한 ‘국민 마라토너’는 얼마나 모았을까.

“부인이 재테크에 능하다는 얘길 들었다”고 운을 띄웠다. 김씨는 정색하며 “남편이 젊은 시절부터 아끼고 잘 모으는 편이다. 결혼 전 서울에 43평짜리 아파트가 있었는데 결혼 이듬해 내가 팔자고 해서 팔았다. 그 후 집값이 폭등했다”며 재테크에 문외한이라고 했다.

김씨는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 모았다”고 대답했다. 인터뷰 후 이봉주에게 다시 물었더니 “지금 사는 아파트 외에 땅과 건물이 좀 있다”는 좀 더 구체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소속팀 관계자에게 한 번 더 물었다. 그 역시 망설이다 “부인이 그런 쪽(재산 관리)에 밝다. 정확한 건 모르지만 50억~100억원 정도라고 들었다. 이봉주 연봉이 부장급과 임원급 중간쯤이다. 메달리스트 연금도 있고. 예전 한창 주가를 올릴 땐 대회 출전료만 1억원 이상이었다”고 귀띔했다.


 

글=장혜수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http://news.joins.com/article/3553051.html?ctg=1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