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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만사 ▣/이런일 저런말

허참, "가족오락관 폐지, 미련은 없다"

by 세월따라1 2009. 4. 8.

 

2009년 4월 2일 목요일 26년의 장정을 마감하는 종영방송 녹화를 마쳤다. 사흘 뒤인 4월 5일 식목일에 이 글을 쓰고 있다.


담담한 척 하려고 무척 노력했었다. 처음 가족오락관이 폐지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내가 “어머, 말도 안돼.”라고 할 때도 난 “그렇게 오래했는데, 말 되지.”라고만 대답했으니까.
KBS 예능팀장이 “낼 모레 방송분이 종방이 되겠네요. 섭섭해서 어쩌죠?” 했을 때도 난 “그으래? 다음 주가 아니고? 알았어. 낼 모레 보지 뭐.”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종영 방송 녹화 당일. 참가자들이나 스태프나 바라보는 눈길이 마치 내 병문안을 온 것만 같다. 난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다.
오프닝 인사도 씩씩하게 했다. “안녕하세요~! 가족오락관 허참, 이선영입니다. 여러분 오늘 가족오락관이 26년을 마감하는 최종회입니다! 1984년 4월 시작해 2009년 4월에 대장정을 끝내는 군요! 그 사이 저는 30대에서 50대가 되었군요!”

 

 ▲ 가족오락관 마지막회 방송 모습

한데 이 말을 하는 순간 만감이 교차하는 거다.
가족오락관은 사실 초창기엔 연예인이 아닌 박사, 교수들을 불러놓고 재치를 겨루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뒤 성악가, 연극인, 국악인, 스포츠맨으로 출연진이 바뀌었고, 나중에야 연예인을 섭외하기 시작했다. 한창 땐 시청률 30%가 넘는 프로그램이었다. 전에 없이 주부 방청객을 불러놓고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도 당시로선 획기적인 시도였다. 최초의 가족 중심 오락 연예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요즘 나오는 각종 버라이어티 오락 프로그램도 사실 가족오락관에서 출발했으니까.


그래서 울지 않으려고 했다. 마지막 최종회 최종점수를 확인하기 위해 “다같이 외칠까요~! 가족오락관! 최종점수! 몇 대 몇!”을 외칠 때까지만 해도.
내가 그 멘트를 힘주어 외치자 스튜디오는 금세 초상집 분위기로 변했고, 출연자들은 마치 문상객 같은 표정으로 애써 울음을 삼키기 시작했다. “아이고, 안 이러려고 했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끝내 나도 목소리가 떨리는 걸 참지 못했다. 눈시울도 잠깐 붉혔던 것 같다.

 ▲ 손미나 아나운서와 800회 특집 진행 당시의 모습


1984년 4월, 그러니까 가족오락관이 처음 출발했던 날. 난 마치 식목일에 아이 팔뚝 만한 벚나무 한 그루를 여의도 맨 땅에 심는 기분으로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구덩이도 파고 뿌리도 살짝 들어올려 주고 흙도 채우고 발로 토닥토닥 밟아주고 물도 흠뻑 주었다. 26년 동안 녀석은 나보다 훨씬 크게 자랐다. 화사한 자태를 뽐냈고,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사랑을 받았다. 아름다운 향기를 선물하기도 했고, 제법 큰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에게 쉼터도 제공해주었다.


한데 어느 순간부터 난 이 녀석의 미소 속에 한숨이 드리워져 가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수상쩍다 싶어 가까이 다가서 보니, 녀석은 한참 때 그 싱그럽고 화사한 모습, 새와 나비 그리고 별과 행복했던 옛 시절을 그리워 하고만 있는 것이다.


이게 아니다 싶었다. ‘넌 내게 있어 언제나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것이 훨씬 좋아. 힘내! 그럼 너에게 있어 내일은 설레는 나날이 될 거야!’ 그렇게 다독거리며 오히려 고단했지만 과분한 삶을 지낸 것에 대하여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 그게 바로 우리가 가족오락관을 종영하기로 결정한 이유다.

 

 

▲ 26년간 수많은 사람이 거쳐간 가족오락관

끝끝내 태연한 척 하는데 실패했지만, 난 미련 없다. 26년이 아니라 30년을 채우고 그만 두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나로선 과분한 사랑 과분한 관심 끝없는 애정을 받았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26년 동안 초대 연출가 조의진 KBS 전 본부장 외에 PD만 30명이 거쳐갔고, 초대 여성MC 오유경씨 외에 여자 진행자만 20명이 넘게 바뀌었던 프로그램. 오경석 작가가 21년 동안 숱한 아이디어를 쏟아내며 코너만 454개를 만들었고, 그 동안 출연한 사람들은 1만 여명이 넘는 데다, 자발적으로 참여에 신청해준 방청객만 11만명이 넘는 프로그램! 나의 가족오락관. 이젠 내 맘 속에 새로운 식목일을 기념하듯 꼭꼭 심어둘 시간이다.


자, 그럼 끝으로 가족오락관 최종점수 다같이 외칠까요!

“가족오락관 최종점수, 몇 대 몇!”

 

허참 / 방송인

http://choen.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4/06/20090406014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