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걸 교수의 공공디자인 클리닉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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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는 6100여 개의 버스정류장, 290여 개의 지하철 역사가 도시 전역에 그물망처럼 얽혀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이동수단의 불합리한 배치로 인해 이용자들이 혼잡과 불편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장소로 열차·지하철·버스·택시 등 모든 대중교통수단이 만나는 서울역을 들 수 있습니다.
서울시는 서울역 주변의 상습 정체 해소와 빠른 환승을 위해 여러 환승시설을 통합해 상호연계성을 갖도록 하는 종합환승센터를 조성해 25일 개통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20여 개의 승차대 중 첨단기술과 예술이 결합된 12개의 미디어 승차대가 세워집니다. 이 승차대는 통합 환승서비스 기능을 혁신했고, 장소 자체가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 되는 ‘장소기반 미디어(Locative Media)’ 기술을 도입해 예술적 표현을 가능케 했습니다.
서울은 시민이나 외국인 관광객에게 ‘정보기술(IT) 도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깊은 땅속을 달리는 지하철 전동차 속에서 휴대전화를 장애 없이 이용하고 무선 인터넷 서비스로 방송을 시청하는 모습은 지구촌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풍경입니다.
민간기업인 현대카드(주)가 디자인을 한 이 미디어 승차대와 주변 가로시설물로 인해 서울은 또 한번 창의적인 IT도시임을 과시하게 됐습니다. 현대카드의 의뢰로 디자이너 채정우가 설계한 이 승차대들은 지붕을 포함한 모든 면이 투명유리로 돼 있어 낮에는 주변 경관이 투시돼 보입니다. 유리 안에 전류가 흐르는 얇고 투명한 막이 있고 이 막에 발광다이오드(LED)가 결합돼 있어 야간에는 수많은 작은 불빛이 빛나는 영상스크린으로 변합니다. 미디어 승차대는 네트워크 시스템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송출하는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쌍방향 매체입니다. 중앙관제실을 통해 뉴스·날씨 등 일상의 공공정보는 물론 미디어 아티스트의 작품과 같은 다양한 콘텐트까지 유리면에 띄워 국가행사나 도시축제 시기에 이벤트 요소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승차대에 장착된 센서가 사람의 동작, 차량의 움직임, 기상 상태 등에 반응해 도시와 시민, 시민과 승차대 간의 상호소통을 지원한다는 점입니다. 누구나 승차대로 접근하면 영상이 변화하며, 나아가 웹서비스를 통해 시민이 직접 콘텐트 생산에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서울시와 민간기업, 전문디자이너 간의 긴밀한 협의와 시민들의 참여로 완성된 참여디자인의 좋은 사례입니다.
도시의 랜드마크는 반드시 큰 규모의 구축물이거나 권위적일 필요가 없습니다. 시민이 즐겁게 다가가고 함께 공유할 수 있으면 그것이 랜드마크로 발전합니다. 창조적인 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해 나갈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도시, 교감하고 반응하는 도시, 시민의 감성을 폭넓게 일깨우는 도시입니다. 이야기를 생산하고 시민 간의 상호작용을 증진시키는 이 미디어 정류장은 시민의 창의성을 자극하는 랜드마크입니다.
권영걸 서울대 교수 · 한국공공디자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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