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거기서 거기" "밍밍하다"…
보리·홉 등 비싼 원료 함량 적어
거칠고 쌉싸래한 맛 못살린 탓
獨·日 등 외국맥주 수입 2배 늘어
"여기 맥주 큰 거 한 병만 주세요."
지난달 30일 낮 12시30분쯤 서울 중구 봉래동 1가의 한 일식당. 손님 3명이 맥주를 주문했다. 종업원이 '하이트' 맥주를 가져왔다. 맥주를 시킨 직장인에게 "왜 브랜드를 말하지 않느냐"고 묻자 "어차피 오비 아니면 하이트 두 회사뿐인데요, 뭐"라는 답이 돌아왔다.
국산 맥주를 접하는 외국인들도 반응은 비슷하다. 이날 밤 L호텔 바에서 만난 한 외국인은 "한국 맥주를 처음 마셔 보았는데 왠지 '밍밍하다(watery)'"고 말했다.
웨스틴조선호텔의 브루마스터(Brew Master: 맥주 제조의 전 공정을 관리하는 양조 기술자)인 오진영(33)씨는 "국산 맥주의 맛은 거기서 거기"라며 "솔직히 국산 맥주 제품은 100% 구분할 자신이 없다"고 말한다.
국산 맥주가 이런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국내 맥주 회사들이 주 원료인 맥아(보리) 대신 옥수수·쌀 같은 부원료를 많이 쓰는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독일은 16세기 내려진 '맥주 순수령(純粹令)'에 따라 지금도 맥아·물·홉(hops)·효모 외에 다른 물질을 첨가할 경우 맥주라고 부를 수 없게 돼 있다. 일본에서도 맥아 함량이 최하 66.7%는 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주세법상 맥아 함량이 10%만 넘어도 '맥주'다. 그렇다 보니 국내 시장을 독과점하는 하이트와 오비맥주는 비용 절감을 위해 맥아 대신 옥수수·쌀 등의 부원료를 많이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두 회사는 자사(自社) 맥주의 정확한 맥아 함량에 대해 "밝히기 어렵다"고 답했다. 대신 양사 관계자들은 "맥아가 많이 들어가면 맛이 거칠어지는데, 부드러운 맛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류업계에서는 맥아가 다른 부원료보다 값이 비싸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수입 맥주회사의 국내법인 관계자는 "한국인들이 부드러운 맛을 그렇게 좋아한다면 최근 3년 새 두 배로 커진 수입 맥주 시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거냐"고 되물었다. 실제 국내 맥주 수입 규모는 2005년 1만9566kL에서 지난해 4만2141kL로 급증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맥아만을 원료로 만든 '하이트맥스'는 2006년 출시 후 판매량이 2007년 539만상자에서 올 들어는 8월 말까지 800만상자를 기록할 정도로 잘 팔린다. '홉'의 양도 국산 맥주는 수입 맥주와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맥주 특유의 쌉싸래한 풍미를 가져다주는 '홉'은 ㎏당 가격이 수만원에 이를 만큼 비싼 원료다.
연구개발(R&D)과 투자도 부족하다. 모 주류업체 소속 연구원은 "가장 기본적인 맥주에 들어가는 '물'만 하더라도 외국 회사들은 엄청난 연구와 투자를 하지만, 국내 회사들은 물에 대한 연구·투자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모 맥주가 '100% 지하 150m 천연암반수'를 광고카피로 내걸고 성공을 거뒀지만, 요즘은 막걸리회사도 300m 아래에서 취수한 천연암반수를 쓴다"고 했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맥주 회사들은 한 개 브랜드의 매출이 회사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며 "제품 개발은 뒷전이고 마케팅에만 돈을 쏟아붓는 지금 같은 방식이 계속되면 조만간 수입 맥주에 그 자리를 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장상진 기자 jhi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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