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바다’가 있었던가? 지난 2일, 주요 일간지 톱 기사로 실린 ‘해군 기동전단 창설’ 사진이 떠올리게 한 질문이었다. 삼면에 바다를 두고 무슨 엉뚱한 질문인가도 책했지만, 머릿속에 펼쳐진 장면은 연안 마을 어부들과 함께 뒤척이는 근해(近海)가 아니라 수평선 너머 끝없이 펼쳐지는 망망대해, 강대국들이 호시탐탐 넘나드는 국적 없는 해상영토였다. 아마 ‘기동전단(機動戰團)’이라는 역동적 명칭 때문이었을 것이다. 제주도 남쪽 해안에 기지를 두고 작전상 필요하다면 인도양·태평양 가릴 것 없이 출동할 수 있는 전투선단이 ‘처음’ 창설되었다. 우리에게 바다의 관념은 조수(潮水)가 출렁이는 갯벌만 한 시야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듯이, 우리의 함대에도 바다는 작전구역이 제한된 연안 바다였던 것이다.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일만 수군(水軍)의 청해진을 기항으로 동북아의 해상무역권을 완전히 장악했던 장보고의 나라에서 바다는 급기야 근해로 쪼그라들었고, 골병 든 배 열두 척으로 왜선(倭船) 삼백 척을 격파한 이순신의 나라에서 바다에 대한 국민적 관념과 전략 개념이 지극히 빈약했다는 사실이. 선박 건조술과 항해술 수준을 감안해 가늠하면 장보고의 활동범위는 오늘날 페르시아만(灣)에 이를 것이고, 거북선의 위력은 공격용 미사일과 장사포를 탑재한 이지스함에 버금갈 것이다. 부국강병이나 제국의 논리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바다는 미지 세계로 나가는 출구이자 문명의 길이고, 유입되는 타자의 문물이 자아를 일깨우는 각성의 공간이다. 그런데 바다라는 이 신문명의 영토는 장보고가 죽은 후 거의 1000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순신의 신기(神技)도 방치된 바다를 수습할 수 없었고, 폐쇄된 바다를 열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조선 정부는 아예 해안선을 봉쇄했고, 바다라는 존재를 인식 세계에서 지워버렸다. 요즘 눈으로 보면, 그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조치였다. 바다는 ‘사악함(邪)’의 근원이자 도덕적 강토를 오염시키는 이적(夷狄)과 금수(禽獸)의 통로였다. 조선은 논밭을 잃고 무인도로 숨어드는 민간인들을 태형으로 다스렸고, 난파선 외국 선원들을 잡아 가두고 동물처럼 부렸다. 17세기 후반, 서쪽 하늘에 나타난 혜성을 지극히 불길한 징조로 읽은 조정은 이양선 출몰을 우려해 해안 마을의 불을 모조리 끄도록 명령했다. 수군을 양성하기는커녕 해안포대를 구축해 접근하는 모든 철선들을 쫓아버렸다. 1871년, 미국의 로저스 함대가 강화도 초지진에 함포사격을 가해 조선인 350명을 죽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바다를 양화(洋禍)로 보는 인식과 수군불요론(水軍不要論)이 더욱 강화되었을 뿐이다. 한말 선교사 헐버트가 명명한 ‘은자의 나라’라는 이 고상한 별칭은 ‘바다를 등진 나라’라는 뜻이다.
조선이 바다를 버린 것은 명(明)나라가 정화함대의 아라비아 원정 이후 아예 바다를 폐쇄했기 때문이다. 주로 육군과 군마의 기동력을 활용해 광활한 대륙과 인접 국가를 다스려야 했던 청(淸)나라는 군항이나 수군 양성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런 사정은 마오쩌둥의 중국까지 이어져, 6·25전쟁 때 압록강으로 10만 육군을 침투시켰던 것이다. 만약 톈진이나 뤼순에서 함대를 발진시켜 인천, 목포, 부산으로 중공군을 파병했다면 지금 한국의 운명은 뒤바뀌었을 것이다. 마침 해양 세력 미국이 태평양전쟁 당시 해양 국가 일본을 제압하고, 한국전쟁 때는 해상과 영공을 장악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대한민국은 ‘잃어버린 천년의 바다’와 함께 영원히 수장될 뻔했다.
이런 눈으로 그 사진을 본다면, 대형 상륙함인 ‘독도함’을 기함으로 최신예 이지스함과 구축함을 거느린 기동전단의 탄생은 가히 역사적 전환에 해당하는 사건이다. 그렇다고 바다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진취적으로 변모했다거나, ‘잃어버린 천년의 바다’를 되찾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로 해석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다. 삼군 중 해군의 위상이 여전히 바닥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의 해양 세력에 둘러싸인 한국 해군의 병력 규모가 겨우 6만8000명, 국방비 중 해군예산이 고작 17.2%에 불과한 실정이라면 기동전단의 탄생은 ‘해양 한국’의 비장한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일 뿐이다. [송호근 칼럼]
원문보기 http://news.joins.com/article/291/4005291.html?ctg=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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