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세상만사 ▣/주마등

[대한민국 제1호] 한국 뮤지컬 1호 '살짜기 옵서예'

by 세월따라1 2013. 3. 11.
 
창작 가무극 '살짜기 옵서예'./박만규씨 제공

 

 

 

"무선 마이크가 다 뭐예요. 일반 마이크도 귀하던 시절이에요. 전파사들 돌아다니면서 선거 때 쓰던 마이크 100여개를 구해다 뮤지컬 공연을 했습니다."

 

1966년 10월 예그린 악단이 서울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창작 가무극 '살짜기 옵서예' (김영수 작·최창권 작곡·임영웅 연출)를 공연할 때 기획을 맡았던 박만규(72)씨는 이렇게 술회했다. 서양 뮤지컬 형식을 모방한 음악극 '살짜기 옵서예'는 한국 뮤지컬 1호로 통한다.

 

1961년 창단한 예그린 악단은 한국적 음악극을 태동시킨 단체다. 한국적 전통을 소재로 국민에게 오락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이합집산을 거듭한 예그린은 서울시립가무단을 거쳐 현재 서울시뮤지컬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살짜기 옵서예'를 한국 뮤지컬 1호로 보는 까닭은 그 규모와 형식 때문이다. 오케스트라와 무용단·합창단·배우를 합쳐 출연진만 100명이 넘었다. 연출가 임영웅은 "뮤지컬이라는 말을 그전에도 썼지만 전속 오케스트라와 많은 장면전환, 다양한 무용 장면을 들여온 것은 '살짜기 옵서예'가 최초였다"고 했다. 그래서 뮤지컬협회는 '살짜기 옵서예'가 초연된 10월 26일을 뮤지컬의 날로 지정했다.

고전소설인 배비장전을 각색한 '살짜기 옵서예'는 주제가가 대중가요로 불릴 만큼 인기를 누렸다. 제주도로 간 배비장이 기생 애랑에게 빠져 망신당한다는 이야기로, 제목은 '살금살금 오세요'라는 뜻의 제주 방언이다. 초연 무대의 여주인공 애랑은 미국에서 막 돌아온 가수 패티김이 맡았다.

'살짜기 옵서예' 초연은 나흘간 밤낮으로 총 8회 공연했고 "임영웅의 연출 스케일을 파악하게 했다. 무대를 휘어잡을 수 있었다"(이상만) "화려한 춤과 노래로 즐거움을 주고 민족 흥취를 느끼게 해주었다"(곽복록) 같은 평을 받았다. 양악기와 재즈 리듬에 담은 한국적 가락, 발레 기법을 응용한 무용(안무 임성남)도 사랑받았고, 이런 성공에 힘입어 여러 번 재공연도 했다.

요즘 관객을 모으는 뮤지컬은 대부분 수입산이다. 서양에서 히트한 뮤지컬이 대본과 음악을 사오는 정식 라이선스 계약을 거쳐 국내에 들어온 것은 1990년대 중반 '브로드웨이 42번가'가 처음이었다.

 

박돈규 기자 coeur@chosun.com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9/10/20090910008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