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세상만사 ▣/주마등

바나나, 오렌지, 딸기빙수... 1920년대 경성의 여름은 氷水의 계절

by 세월따라1 2021. 6. 27.

여름철이면 경성 거리엔 빙수를 파는 노점이 줄이어 등장했다. 얼음 빙(氷)자 깃발을 내걸었다. 조선일보 1934년6월23일자에 실린 사진.

시인 겸 수필가 이하윤(1906~1974)은 빙수(氷水) 마니아였던 모양이다. 30대 한창이던 1939년 여름, 신문에 ‘빙수’ 에세이를 썼다. ‘여름철이 되면 두가지 자랑스럽지 못한 기록의 소유자인 내가 그 가진 바 특징을 발휘하기에 여념이 없다. 청량음료의 섭취량이 그 하나요, 흘리는 땀의 분량이 그들이다. 아마도 나처럼 냉수며 빙수며 사이다며 삐-루며 무릇 청량제치고 좋아하지 않는 것이 없는 사람도 드물게다.’(조선일보1939년 8월3일자· 파란 글자를 누르면 옛날기사로 연결됩니다.)

그는 ‘중학4학년때 일본 수양(修養)여행을 갔을 때 고베에서 아이스크림과 빙수를 합하여 하루에 아홉 그릇을 먹은 데서 시작됐다’며 이력을 소개한다. 경성에서 학교 다니던 4년간 여름마다 ‘상당한 훈련’을 거친 데다 일본 빙수라는 게 ‘경성 시내 빙수 집에서 주던 커다란 접시 한그릇에 비하면 3분의 1을 넘지 못’해 ‘아홉 그릇(아이스크림 포함)’ 기록을 세웠다는 자랑이었다. 이하윤이 경성제일고보(경기고 전신)를 수료한 게 1923년이니까, 그 무렵 경성 시내엔 빙수가 꽤 유행했던 것같다. 서울대 사대에서 가르치다 정년퇴임한 이하윤은 한때 교과서에 실린 수필 ‘메모광’으로도 유명하다.

 

 

1920년대 서울의 여름은 빙수의 계절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작년 말 낸 '백년식사'

 

‘1920년 서울의 여름은 빙수의 계절이었다.’ 음식의 역사를 연구하는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직설적으로 말한다. 작년말 출간한 ‘백년식사’(휴머니스트)에선 구한말 종로거리에 등장한 빙수가게를 소개한다. 제국신문 1903년 5월16일자에 실린 ‘국영당’(菊影堂) 빙수점 개업광고다. 이 가게는 유행병 예방약을 빙수에 첨가한다고 알렸다. 당시 얼음은 겨울철 한강에서 채취해 보관하던 걸 썼기에 식중독 같은 유행병에 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강 얼음을 손으로 잘게 깨서 만들던 빙수는 1920년대 들어 한단계 진화한다. 일본에서 얼음을 가는 빙삭기가 들어왔다. 빙수는 물론 일본에서 들여온 간식이다. 1890년대 일본 대도시엔 여름이면 노점 영업을 하는 빙수점이 많았다고 한다.

 

제국신문 1903년 5월16일자에 실린 빙수점 국영당 개업광고. 종로에 개업한다는 내용이다. 오른쪽은 조선신문 1929년6월28일자에 실린 빙삭기 광고. 얼마전까지 한국 빙수점에서 쓰인 기구와 비슷하다.

 

식중독, 콜레라 경고 기사도 등장

1920년대가 되면 여름마다 이런 기사가 실릴 만큼 빙수는 떠오르는 간식이었다. 1921년 여름에 개업한 빙수점이 417곳인데, 일본인이 하는 가게가 187곳, 조선인 가게가 230곳(1921년 7월27일 ‘금하의 빙점’)이라거나 1923년 6월말 벌써 계절영업자(주로 빙수점)가 334곳(일본인 174곳, 조선인 160곳)이란 기사(1923년 7월10일 ‘계절영업증가’)였다.

한강에서 채취한 얼음을 빙수재료로 쓰다보니, 여름철이면 식중독을 경고하는 기사가 신문에 더러 났다. 1920년 콜레라가 유행하자 ‘냉수·빙수 같은 것은 아무쪼록 먹지 않도록 할일이오’(1920년7월11일 ‘콜레라 예방주의’)란 권유다. 한밤중에 구역질하며 설사를 하는 아이 얘기를 소개하면서 약을 먹였더니 팥껍질을 한사발이나 누었다며 ‘팥빙수’를 많이 먹어 배탈이 났다는 사연도 소개한다. ‘아무리 더운 날일지라도 절대로 얼음을 가까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얼음이 배속에 들어가면 벌써 그 냉도만으로도 위의 점막은 ‘가다루’를 일으킵니다.’(1931년8월9일 ‘빙수를 어떻게 먹어야 탈안나나’)

 

1920년대 경성엔 바나나, 딸기, 오렌지 물을 얹은 과일맛 빙수가 유행했다. 사진은 요즘 인기있는 신라호텔의 망고빙수.

 

바나나 빙수, 오렌지빙수, 딸기빙수, ‘취향의 시대'

당시 빙수는 팥보다는 바나나, 오렌지, 딸기 같은 과일즙이나 시럽을 주로 뿌려먹었던 모양이다. 망고 빙수, 블루베리 빙수처럼 요즘 인기있는 과일빙수가 100년전 벌써 유행했던 셈이다. 주영하 교수는 팥빙수라는 말은 1970년대 들어서야 등장한다고 했다. 국문학자 김동식 인하대 교수는 당시 경성 거리엔 빙수말고도 칼피스, 라무네(레모네이드), 사이다, 시토론, 평야수(平野水)같은 탄산음료가 유행했다고 전한다.(1920~30년대 경성의 거리와 음식에 대한 몇가지 소묘, 대산문화 2017년 여름호) 칼피스는 우유를 발효시켜 만든 유산균 음료이고, 라무네와 시토론은 물에 과즙과 포도당을 넣은 레모네이드 풍 음료, 평야수는 설탕·과즙·향료가 들어가지만 천연탄산수를 베이스로 한다는 특징이 있었다. 갖가지 청량음료에 더해 빙수 한 그릇에도 바나나맛, 오렌지맛, 딸기맛을 구분하던 ‘취향의 시대’가 탄생한 셈이다.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 세상만사 ▣ > 주마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0년전 여성 사진가가 찍은 ’산소같은 그녀’  (0) 2021.10.24
1863년에 개통한 지하철역  (0) 2021.09.26
1930년대 조선의 모습  (0) 2021.04.17
트위스트 김 댄스  (0) 2019.06.19
김세레나 공연  (0) 2019.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