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생의 끝자락에서도 무대를 바라봤다. 코미디언 배삼룡(1926~2010)씨. 그의 육신은 이제 흙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일평생 구르고 넘어지며 웃음 보따리를 풀어놓았던 그다. 그는 몸으로 무대를 살아냈고, 무대를 꿈꾸며 고단한 몸을 내려놨다. 두 달 전 그는 이승에서 마지막 말을 남겼다. “걱정마, 나 무대에 꼭 설 거야.” 그렇게 배삼룡은 돌아갔다. 저편 세상에 마련된 무대 한 켠으로.
고인은 1926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배창순. 두 돌이 되도록 걸음을 떼지 못한 그를 두고 동네에선 ‘앉은뱅이’라고 수군댔다. 타고난 약골이었던 그는 학교에선 ‘명물’로 통했다. 악극단(유랑극단) 공연마다 기를 쓰고 달려갔다. 유명 배우의 이름을 줄줄 뀄다. 초등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광복 후 춘천에 정착했다. 그의 나이 스물. 미래가 희미했던 청년은 극장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생전의 그는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다. “가까운 곳에서 나팔소리라도 들리면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했다.”
유랑극단에서 이름을 날리던 그는 1969년 MBC TV로 무대를 옮겼다. ‘비실이춤’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구봉서와 보여준 콤비 코미디는 희극계의 교본처럼 여겨진다. TV 첫 배역은 우편배달부였다. “편지 왔습니다” 한마디뿐인 단역이었다. 그는 즉석에서 도배지를 밟고 넘어지는 애드리브를 추가해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만담 위주였던 당시 코미디에 찰리 채플린식 슬랩스틱 코미디를 선보인 것이다. 배삼룡식 ‘몸개그’는 영구·맹구 등으로 이어지는 ‘바보 개그’의 원조로 불렸다.
1970년대 그는 바보 연기와 개다리 춤으로 서영춘·구봉서 등과 함께 코미디언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했다. 당시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MBC와 TBC가 대낮 납치극을 벌인 유명한 일화도 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도 “배삼룡이 왜 안 나오느냐”고 물어봤을 정도다. 생전 인터뷰에서 그는 “방송사가 달려들고 백지수표가 등장하고 청와대까지 끼어든 해프닝이었다”고 회고했다.
23일 별세한 고 배삼룡씨의 유족들이 고인의 대형 영정을 들고 장례식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배씨는 서울 아산병원에서 4년째 흡인성 폐렴으로 투병 생활을 이어오다 이날 새벽 숨을 거뒀다. [김민규 기자] | |
생전 그의 별명은 ‘비실이’였다. 깡마른 체구에다 비틀비틀 대는 특유의 걸음걸이 때문이다. 여든넷 그의 생애 또한 자주 비틀댔다. 세속적 정점과 바닥을 두루 체험했다. 하지만 ‘비실이’ 배삼룡은 그럴 때마다 자리를 딛고 일어나려 애썼다. 생애 마지막 벽 앞에서조차 무대를 꿈꿨던 그다. 고단한 시대를 코미디로 어루만졌던 배삼룡. 그는 진정 낙천과 익살의 전도사였다.
글=정강현 기자
사진=김민규 기자
원문보기http://people.joins.com/news/html/4030675.html?cloc=home|people_article|people&total_id=4030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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