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일간 분쟁으로 번지고 있는 섬의 명칭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 혼란스럽다. 언론에서는 이 섬을 '센카쿠쇼토(일본식)'라거나 '댜오위다오(중국식)'라고 하는데, 둘 다 영 어색하고 불편하다. '첨각제도(尖閣諸島)' 또는 '조어도(釣魚島)'라고 하면 의미도 다가오고 편한데 굳이 원음으로 쓰는 까닭은 인명·지명에 대한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 규정 때문이다.
원음주의에 의해 중국의 지명을 '랴오허·랴오둥반댜오·타이산·산둥반댜오'라고 적고 말하면 혀만 꼬일 뿐 의미전달도 되지 않아 재삼재사 번역해서 이해해야 하는 불편함만 생긴다. 반면에 '요하(遼河)·요동(遼東)반도·태산(泰山)·산동(山東)반도'로 하면 발음도 편하고 의미전달도 잘된다. 누구를 위하여 '孔子(공자)·毛澤東(모택동)'을 '콩즈·마오쩌둥', '北海島(북해도)·豊臣秀吉(풍신수길)'을 '홋카이도·도요토미 히데요시'라고 읽어야 하는가? 우리가 원음으로 읽어봤자 성조와 장단이 맞지 않아 정작 중국사람도 일본사람도 알아듣지 못한다.
외래어 표기의 원음주의는 국제화 추세에 맞춘 듯 보이지만 이는 큰 착각이다. 미국은 '로마·파리·주네브·베네치아'를 '롬·패리스·제네바·베니스'라 부른다. 우리나라를 일본은 '강고쿠', 영국은 '코리아'라고 하지 '대한민국'이라는 원음으로 불러주진 않는다.
한글창제 당시 세종대왕이 중국을 '듕귁'이라 한 것을 중국 원음으로 적은 것인 양 곡해하는데, 이는 엄연히 당시의 주체적인 우리식 표기로 봐야 한다. 중국에는 명나라 때나 지금이나 ㄱ·ㅂ 종성발음이 없으므로 만약 중국 원음으로 했다면 '듕귁'이 아닌 ㄱ 받침 없는 '쭝꾸어'로 적었을 것이다. 또한 당시의 중국을 추종하는 충실한 원음주의라면 '미잉꾸어'(明國)나 '따미잉'(大明)으로 적었을 것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랴오둥반댜오와 산둥반댜오 사이에 있는 보하이만'이라는 어쭙잖고 시답잖은 표현을 버리고 '요동반도와 산동반도 사이에 있는 발해만'이라는 주체적이고 당당한 우리식 표현을 되살려야 한다. 무릇 말과 글은 억지로 틀어막으면 불편만 가중되고 의미전달이 안 되고 생명력을 잃을 뿐만 아니라 주체성까지도 잃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박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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