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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만사 ▣/주마등

[대한민국 제1호] 박정희 대통령, 1968년 '고속도로시대' 열다

by 세월따라1 2013. 6. 2.

"이 도로야말로 인간의 피와 땀과 의지의 결전으로써 이루어진 공사요, 우리나라의 도로 시대는 지금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1970년 7월 7일 대구. 박정희 대통령은 감동에 들뜬 목소리로 대한민국 도로 혁명의 새 시작을 알렸다. 총 연장 428㎞(현재는 직선화 등으로 416㎞), 305개(현재 353개)의 교량과 12개의 터널이 포함된 경부고속도로 전 구간이 개통됐던 것이다. 계획보다 1년이 앞당겨진 '단군 이래 최대 토목공사'의 완공이었다. 당시 개통식에 참석한 박 대통령은 샴페인 한 병을 도로에 뿌리며, "가장 싼 값(1㎞당 약 1억원)으로 가장 빨리 이룩한 대(大)예술작품"이라며 감회에 젖었다.

305개(현재 353개)의 교량과 12개의 터널이 포함된 경부고속도로<오른쪽 사진>,

1969년 2월 15일 경부고속도로 서울~오산 구간 개통식에 참석한 박 대통령이 샴페인을 도로에 뿌리는 모습<왼쪽 사진>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우리나라에는 자동차가 왕래하는 신작로가 뚫리기 시작했지만 도로라 부르기 민망할 지경이었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파괴된 국토의 동맥(動脈)을 되살리고, 경제 부흥을 위해 박 대통령이 구상한 게 고속도로였다. 1964년 서독을 방문했던 그는 '아우토반'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귀국 후 박 대통령은 손수 도로망을 그려가며 연구에 몰두했다. 당시 현대건설 정주영 사장은 "밤늦게 청와대로 불려 들어가면 고속도로 관련 서적이 쌓여 있는 서재로 데려가 직접 인터체인지 구상을 그려 보이곤 하는 일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박 대통령은 1967년 대선 공약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들고 나왔다. 야당 등에서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부유층 유람로를 만들려고 하느냐", "국가 재정이 파탄 날 게 뻔하다"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경부고속도로에 앞서 경인고속도로를 시험 건설했다. 1967년 3월 착공된 경인고속도로는 1968년 12월 개통되면서 국내 고속도로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 서울 영등포~인천 가좌동을 잇는 총 연장 23.9㎞, 왕복 4차로였다.

1968년 2월 착공된 경부고속도로의 노선, 공정 계획, 추진 방식은 대통령이 직접 결정했다. 당시 김정렴 상공부장관은 "대통령이 마치 전쟁처럼 직접 병사들을 지휘했다"고 회고했다. 건설 방식도 불도저식이었다. 1공구 공사를 하며, 2·3공구를 설계해 나갔다. 인력이 없어 육사 출신 장교 22명이 2개월간의 교육만 받고 현장 감독관으로 투입되었다. 희생도 뒤따랐다. 최대의 난(難)공사 구간이었던 당재터널(현 옥천터널)에선 낙반사고가 속출하며, 2년5개월의 공사기간에 77명이 순직했다.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전국이 '1일 생활권'이 됐고, 5년 후 국산차인 '포니'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자동차 시대도 열리게 됐다. 

 

 

유하룡 기자 you11@chosun.com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0/27/20091027003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