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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만사 ▣/주마등

[대한민국 제1호] 북한 공작원, 1958년 민간 여객기 납치

by 세월따라1 2013. 6. 13.

1958년 2월 16일 부산 수영비행장을 떠나 서울로 향하던 대한민국항공사(KNA) 소속 여객기 '창랑호(滄浪號)'가 경기도 평택 상공에서 무장한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납치돼 평양 순안공항에 강제 착륙했다. 당시 북한 공작원들은 총기로 조종사를 위협해 승객·승무원 34명이 탄 KNA기를 공중 납치했다. 우리나라 항공 역사상 첫 여객기 피랍(被拉) 사건이 발생한 순간이었다.

우리 정부는 2월 20일 북한 공작원 김택선 등 3명을 납치범으로 발표했고, 25일에는 사건 배후로 기덕영 등 3명을 체포했다. 북한은 "KNA기가 '의거 월북'했다"고 선전했지만, 유엔 군사정전위원회는 2월 24일 북측에 승객·승무원과 기체를 즉시 송환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우리 국회는 2월 22일 북한 만행을 규탄하는 메시지를 16개 6·25 참전국에 보냈다.

당시 북한은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의 방북을 앞두고 '남한 비행기가 자진 월북했다'는 체제 선전을 위해 납치극을 꾸몄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은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자 3월 6일 탑승자 26명을 돌려보냈다. 납치범 등은 송환되지 않았다. 통일부 관계자는 "창랑호 피랍은 워낙 오래전 사건이고 대다수 탑승자들이 돌아와 현재 납북 사건으로 관리하고 있지 않다"며 "정확한 기록이 없지만 납치범을 제외한 일부가 북에 남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항공사(KNA) 소속 여객기 '창랑호(滄浪號)'.

 

 

반면 1969년 12월 11일 북한이 공중 납치한 대한항공(KAL) YS-11 여객기는 '강제 납북 사건'으로 관리된다. 당시 KAL기는 승객 47명과 승무원 4명 등 51명을 태우고 강릉을 출발해 서울로 가던 중 대관령 상공에서 납치돼 원산으로 기수를 돌렸다. 북한 방송은 창랑호 피랍 때처럼 "자진 입북했다"고 보도했다.

우리 정부는 탑승자들의 과거 행적을 근거로 "고정간첩 조창희가 여객기를 납치했다"고 발표했다. 사건의 진상이 완전히 벗겨지지 않은 셈이다.

당시는 1968년 김신조 일당의 '1·21' 청와대 습격 사건과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같은 해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으로 남북이 극도의 긴장 상태였던 때였다. 북한은 납치 66일 만인 1970년 2월 14일 탑승자 중 승객 39명만 판문점을 통해 돌려보냈다. 그러나 승무원·승객 12명(납치범 포함)의 송환은 지금까지 거부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송환자 증언에 따르면 억류된 탑승자들은 북한 출신이거나 북한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억류자 중 여승무원인 성경희씨는 2001년 2월 3차 이산가족 상봉 때 남한에 있는 어머니를 만나기도 했다.

 

 

안용현 기자 ahnyh@chosun.com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2/16/20091216005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