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택시요금까지 카드로 결제하는 세상이지만 30년 전만 해도 신용카드는 일부 특권층만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1978년 4월 10일, 외환은행이 전세계 가맹점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비자(VISA)인터내셔널과 제휴해 국내 최초의 신용카드를 발급했다. 이 카드는 해외 사용이 목적이었다. 외국 출장이 잦은 외교관, 수출기업 및 공사 임원, 대학교수 등이 엄격한 심사를 거쳐 발급받았고, 일반 해외 여행객이 가지려면 한국은행 총재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국내 가맹점은 거의 없어 소수의 호텔과 고급 레스토랑 등에서만 쓸 수 있었다.
당시 외환은행 조선호텔지점에 근무했던 최태룡 외환은행 카드운영센터장은 "해외여행조차 쉽지 않던 시절에 신용카드는 사회적 신분과 권위의 상징이었다"며 "종종 카드를 발급해달라는 외부 '민원'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발급 첫해 회원은 200여명이었지만, 개별 회원 정보는 남아 있지 않다.
이보다 앞서 1969년 7월 1일 신세계백화점이 국내 최초로 백화점카드를 발급했다. 일본 도쿄에서 플라스틱 재질의 카드 378장을 들여와 삼성그룹 간부들에게 발급했다. 사인만으로 물건을 외상구매하고 월말에 대금을 갚는 등 신용카드의 면모를 갖췄으나, 발급 대상과 사용처가 제한돼 외환비자카드를 최초의 신용카드로 보는 견해가 많다.
▲ 비자(VISA)인터내셔널과 제휴한 국내 최초의 신용카드(사진 위),
신세계백화점이 발급한 국내 최초의 백화점카드(사진 아래)
1980년엔 전국 최대 점포망(164개)을 갖고 있던 국민은행이 카드 발급을 시작하면서 일반인도 카드를 발급받아 1회 10만원, 한 달에 15만원까지 쓸 수 있게 됐다. 이어 1982년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신탁은행 등 5개 은행이 비씨카드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신용카드 시대의 막이 올랐다. 가맹점이 다양해졌으며, 사용 지역도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지로 확산됐다.
이후 카드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 1990년 1038만장이던 신용카드 수가 1996년에는 4111만장으로 4배 늘었고, 가맹점수도 이 기간 6배 늘었다. 2000년대 들어 탈세 방지와 경기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신용카드 규제를 소홀히 하면서 2003년 카드사태로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기도 했다.
9월말 현재 국내 신용카드 발급장수는 1억271만장으로, 경제활동인구 한 명당 4장꼴로 카드를 갖고 있다. 하루 평균 1422만건, 1조3000억원어치가 신용카드로 결제된다.
세계 최초의 신용카드는 1950년 미국 시카고의 사업가 프랭크 맥나마라가 친구인 변호사 랄프 슈나이더와 함께 만든 '다이너스 클럽 카드'로, 초기 가맹점은 뉴욕의 14개 식당이었다.
선정민 기자 sunn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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