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호 지폐는 6·25 전쟁 와중에 세상의 빛을 봤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법정 화폐인 한국은행권을 발행하는 한국은행은 1950년 6월 12일 설립됐다. 하지만 지폐를 발행해 보지도 못한 채 창립 13일 만에 6·25 전쟁을 맞았다. 그 당시 우리나라 시중에서는 일제시대에 중앙은행 역할을 했던 조선은행이 발행한 조선은행권 지폐가 유통되고 있었다.
전시(戰時)에 필요한 현금을 조달하기 위해 한은은 6월 29일 급하게 도쿄 지점을 통해 일본 정부에 "한국은행권 지폐를 인쇄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된다. 당시 일본을 점령하고 있던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도움으로 열흘 만에 일본 대장성 인쇄국에서 1000원(圓)짜리 152억원, 100원짜리 2억3000만원어치를 찍어 미 군용기 편으로 김해공항으로 운송했다. 급박한 상황 탓에 1000원권 앞면의 도안에는 주일 대표부에 걸려 있던 이승만 대통령 초상화를 이용했으며, 100원권 앞면에는 주일 대표부가 소장한 책자에서 골라낸 광화문 사진을 사용했다.
▲ 일본 대장성 인쇄국에서 찍어낸 1000원(圓)짜리<사진 위>, 100원짜리<사진 아래>.
새 한국은행권은 다시 김해에서 대구로 옮겨져 7월 22일 최초로 발행해 유통됐다. 전시(戰時)라 한은은 최고 의결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 소집도 못하고 총재가 직권으로 화폐 발행을 공고하기도 했다. 1000원권과 100원권 외에 부족한 지폐는 기존 조선은행권(100원, 10원, 5원, 1원 등)과 섞어 쓰도록 했다.
하지만 북한군이 조선은행권 100원권을 불법 인쇄해 유통시키자, 한은은 조선은행권 100원의 유통을 금지시키고 1950년 9월~1953년 1월 5차례에 걸쳐 한국은행권으로 교환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발행된 한국은행권은 전쟁으로 생산이 위축되고 군사비 지출이 늘어 물가가 급등하면서 가치를 잃어가게 된다. 1945~1952년 국내 물가는 400배 이상 급등했다. 이에 정부는 1953년 2월 화폐가치를 100분의 1로 낮추고 새로운 화폐단위인 '환'을 도입하는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최초의 '원'표시 한국은행권은 '환'표시 한국은행권에 바통을 넘겨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후 정부는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또 한 차례 화폐 개혁을 단행해 화폐가치를 10분의 1로 낮추고 현재 사용하는 '원' 단위를 도입했다. 따라서 최초의 한국은행 1000원(圓)권의 액면가치는 산술적으로 따져 1000분의 1이 되므로 현재의 1원에 해당한다.
한국은행은 이후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고액권의 필요성이 증대됨에 따라 1972년 7월 5000원권, 1973년 6월 1만원권을 최초로 발행했다. 마지막 고액권인 1만원권이 나온 지 36년 만인 작년 6월 신사임당 초상이 그려진 5만원권이 처음으로 발행됐다.
100원짜리 동전은 1970년 11월, 50원은 1972년 12월, 500원은 1982년 6월 지폐를 대체하면서 등장했다.
방현철 경제부 기자 banghc@chosun.com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3/03/20100303007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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