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3월 15일 경북 구미시 전자기술연구소(현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전길남 KAIST 교수(67·현 게이오 대학 교수·작은 사진)와 수십명의 연구원들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컴퓨터 앞에 서 있었다. 누군가 컴퓨터 자판에 있는 엔터(Enter)키를 눌렀고 몇 초 뒤 모두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통신망에) 붙었다, 로그인(log in) 성공!"
전자기술연구소와 서울대학교가 인터넷으로 연결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터넷망 이름은 'SDN(System Development Network)'이다. 한국 최초의 인터넷망을 만든 전 박사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우리가 인터넷 연결에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제3공화국 시절 우리 정부는 해외과학자 귀국 정책을 실시했다. 그 첫 결실의 대상이 전길남 교수다. 일본에서 태어나 오사카대학 전자공학과를 나와 미국 UCLA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전 교수는 1979년 '가난한' 조국에 돌아온다. 세계 최초로 인터넷을 만들어 '인터넷의 아버지'라 불리는 빈튼 서프와 함께 통신 기술을 연구한 전 교수에게 정부가 맡긴 일은 컴퓨터 개발이었다. 그는 컴퓨터 개발 작업과 동시에 인터넷을 만든다. 사실 정부는 전 교수가 인터넷을 만든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는 "당시 정부에 인터넷을 개발하자고 제안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아 컴퓨터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인터넷 개발을 슬쩍 끼워 넣었다"고 말했다.
1983년 서울대와 전자기술연구소에 이어 KAIST가 SDN망에 참여했다. 당시 인터넷은 지금의 인터넷과는 전혀 달랐다. 그냥 이쪽 컴퓨터에 있는 정보를 상대방 컴퓨터에 옮기는 수준이었다. 해외 인터넷과 접속할 수도 없었다. 미국이 외국에서도 자국 인터넷망에 접속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1986년이다. 또 스위스의 팀 버너스 리가 요즘 인터넷과 같은 말로 쓰이는 월드와이드웹(WWW)을 만든 것이 1992년이다.
국내에서 개인이 처음 인터넷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94년 6월이다.<큰 사진>(1995년 9월 홍대 부근에 문을 연 국내 최초 인터넷 카페 '넷스케이프') 한국통신(현재 KT)이 코넷(KORNET) 서비스를 상용화한 다음 일반인들도 대학과 연구소의 전유물이던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코넷의 이용료는 월 4만원이었다. 평균 전송속도는 9.6Kbps. 지금 사용하는 초고속인터넷의 100분의 1 이하다.
사진 하나를 받기 위해 10분 이상 기다리기도 했다. 그래서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로 '인(忍)터넷'이란 별칭이 생길 지경이었다. 지금과 같이 빠른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1999년이다. 하나로통신(현재 SK브로드밴드)이 그해 초고속인터넷(ADSL)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인터넷 속도가 크게 빨라진 것이다.
백강녕 기자 young100@chosun.com
http://issue.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21/201004210104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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