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태양신 영역 너머로 가다
1977년 한 장의 황금 레코드판이 우주로 날아갔다. 무인 탐사선 보이저(Voyager) 1호에 실려서다. 레코드판에는 ‘안녕하세요’란 한국말을 비롯해 55개 국어 인사말, 개 짖는 소리, 바흐 등의 음악, 지구 사진 118장 등이 담겼다. 인류가 외계 생명체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보이저 계획에 참여했던 천문학자 칼 세이건(『코스모스』의 저자)은 “성간(星間)우주를 여행하는 진보된 문명이 있다면 보이저는 그들과 만날 것이고 레코드판이 재생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후 36년. 보이저가 태양계와 태양권을 지나 성간우주에 첫발을 내디뎠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보이저의 플라스마 파(波) 관측 담당자인 도널드 거넷 미국 아이오와대 교수팀은 보이저가 약 1년 전 태양권계면(태양권과 그 밖 성간우주의 경계)을 통과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13일 세계적 과학저널인 사이언스 온라인판을 통해 밝혔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보이저 프로젝트 책임자인 에드 스톤 캘리포니아공대(칼텍) 교수는 “보이저가 ‘그곳(성간우주)에 도착했느냐’는 질문에 이제는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며 “이는 인류의 역사적 도약”이라고 말했다. 보이저를 운용하는 NASA 과학자들이 “성간우주에 진입했다”고 단정적으로 밝힌 건 처음이다.
태양권은 태양에서 나오는 태양풍 입자와 자기력선이 영향을 미치는 공간을 뜻한다. 태양과 수성·해왕성 등 8개 행성으로 이뤄진 태양계보다 훨씬 큰 개념이다. 태양계 끝인 해왕성이 태양으로부터 30.13AU(천문 단위, 1AU=지구~태양 간의 거리=약 1억4960만㎞) 떨어져 있는 반면, 태양권은 그보다 네 배 이상 넓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이저가 이 같은 태양권을 벗어났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거넷 교수팀은 보이저가 관측한 전자 플라스마 진동을 토대로 주변 전자의 밀도를 역산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 4월 9일~5월 22일 보이저 주변 전자 밀도는 ㎤당 0.08이었다. 성간우주의 예상밀도 범위(㎤당 0.05~0.22)에 속하는 수치다. 연구진은 비슷한 진동이 있었던 지난해 10월 23일~11월 27일 데이터와 비교해 봤다. 밀도가 ㎤당 0.06이었다. 보이저가 1년에 3.5AU의 거리를 날아가는 점을 고려하면 AU당 밀도가 약 19%씩 오른 셈이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지난해 8월 25일 보이저가 태양권계면을 통과했을 것이란 추정치를 내놨다.
한국천문연구원 황정아(37) 박사는 “태양권 탈출을 판단하는 지표 중 가장 유력한 증거가 제시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지표인 자기장 방향 변화까지 관측돼야 완벽한 확증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양권계면을 지나면 동-서 방향으로 나타나던 자기장 방향이 남-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보이저의 원래 목적은 태양계 행성 탐사다. 하지만 1989년 임무를 마친 뒤에도 20년 넘게 지구와 교신하며 더 먼 우주로 계속 항해 중이다. 플루토늄을 연료로 쓰는 발전기를 탑재한 덕이다. 보이저는 남은 수명(2025년) 내에 외계 생명체에 인류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김한별 기자
◆성간우주(interstellar space)=태양에서 나오는 태양풍·자기력선이 미치는 공간을 뜻하는 태양권 밖의 별과 별 사이의 우주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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