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70년]창밖의 여자들 “오빠∼”, 친구 만나면 “나 떨고있냐”
《 전쟁의 아픔을 유행가로 달랬고 인기 드라마를 보려 귀갓길을 재촉했다. 대중문화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자 예전 추억을 불러 내는 매개체다. 본보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지난 70년간 대중을 웃기고 울린 대중문화계 ‘대박 사건’ 10가지를 돌아봤다. 응답하라, 그때 그 시절. 》
[1956년]포옹 장면에 꺄악∼ 욕망에 눈 뜨다
‘부인, 오늘은 저를 마음대로 이용해 주십시오.’
―6월 9일 영화 ‘자유부인’ 개봉
영화 ‘자유부인’은 개봉 하루 전에도 상영 허가가 나지 않았다. 대학생 한태석과 대학교수 부인 오선영이 포옹하는 장면 등이 사회도덕 기준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결국 일부 장면을 잘라낸 뒤에야 개봉할 수 있었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교수 부인이 춤바람이 나 결국 불륜을 저지른다는 내용이다. 6·25전쟁의 참화가 사그라지고 새 시대에 대한 열망이 꿈틀대던 시절을 반영했다. 미국 원조를 받던 시절, 서양 소비문화에 대한 환상이 담겨 있다. ‘단장의 미아리고개’, ‘굳세어라 금순아’ 등 전쟁을 소재로 한 노래가 인기를 끌었다. ‘김시스터즈’는 미군 무대에서 활동하다가 대중적 인기를 얻은 한국 걸그룹의 원조였다.
[1964년]금지곡 지정에도 첫 100만 장 음반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이미자 ‘동백아가씨’ 발표
당시 음반 판매량 공식 집계가 없었지만 가요 연구가들은 ‘동백아가씨’가 담긴 음반을 한국 최초의 밀리언셀러 가요로 본다. 국가가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밝은 메시지의 건전 가요 보급에 주력했지만 국민은 이 애달픈 노래에 열광했다. 1966년 이 노래는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그해 베트남 파병이 시작되자 젊은 군인들이 고향을 생각하며 가장 듣고 싶어 했던 게 이 곡이었다. 아직 대중문화 주도층은 기성세대였다. 이후 1968년 포크 싱어송라이터인 한대수의 등장, 1969년 클리프 리처드 내한 공연 등이 1970년대 청년문화의 개화기를 준비했다.
[1974년]경아가 길 트고 영자의 전성시대로
‘짧은 인생을 멋있게 불태운 당신의 연인 경아!’
―4월 25일 ‘별들의 고향’ 개봉
영화 ‘별들의 고향’은 1960, 70년대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 정착한 젊은 여성을 중년 남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른바 ‘호스티스물’의 시초였다. 이 같은 경향은 이후 ‘영자의 전성시대’(1975년)로 이어졌다. 최인호 소설을 원작으로 한 ‘별들의 고향’은 이장호 감독이 연출을, 가수 이장희가 영화음악을 맡는 등 1970년대 청년 문화의 기수들이 대거 참여했다. 영화에는 청바지와 통기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겼다.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배출한 가수들이 인기를 끌었고 1977년 MBC 대학가요제와 1978년 TBC 해변가요제가 시작되며 대학생의 가수 등용문으로 떠올랐다.
[1980년]한국적 팝, 歌王의 ‘위대한 탄생’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조용필 ‘창밖의 여자’
1980년 5월 광주가 상징하는, 국가의 곤봉 아래 질식된 민중은 피를 토하듯 소리치기를 원했다. 그때 ‘창밖의 여자’가 나왔다. 연애에 관한 얘기였고 트로트풍이었지만 젊은 세대도 열광했다. 꽉 막힌 가슴을 대신 토로해 주는 조용필의 한 서린 탁성 때문이었다. 1980년대는 한국적 정서에 팝과 록을 접목한 조용필의 시대였다. 젊은이들 역시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어 갔다. 김민기, 신중현, 산울림의 뒤를 이어 송골매, 다섯손가락, 벗님들이 대표하는 팝, 록, 포크의 청년음악, 청년문화가 앞다퉈 꽃을 피웠다. 컬러TV 시대가 열렸고 쇼는 화려해졌다. 시나위, 부활, 백두산 같은 헤비메탈 밴드들도 ‘젊음의 행진’ 무대를 누볐다.
[1987년]시청률 76%… TV에 빠져든 사람들
MBC TV의 주말극 ‘사랑과 야망’이 최근 시청률 76%를 기록.
―본보 6월 26일 자
1980년 말 컬러TV가 보급되며 영화산업은 잠시 쇠퇴했지만 TV는 중흥기를 맞았다. 성격이 다른 두 형제의 삶을 그려낸 MBC 드라마 ‘사랑과 야망’은 현대사 속에 남성들의 야망과 남녀 간 사랑 이야기를 담아 시청자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김수현 작가의 ‘사랑과 진실’(1984년), ‘사랑과 야망’(1987년), ‘모래성’(1988년) 등이 잇따라 흥행했다. 멜로드라마와 함께 사극과 정치드라마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조선왕조 전체를 다룬 MBC 대하 사극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1983∼1990년)은 당시로는 드물게 시즌제로 방영됐다. MBC ‘제1공화국’(1981년)은 국내 최초의 정치드라마였다.
[1992년]난∼ 알아요, 새로움이 필요하다는 걸
‘사랑을 하고 싶어 너의 모든 향기/내 몸 속에 젖어 있는 너의 많은 숨결/그 미소 그 눈물 그 알 수 없는 마음 그대 마음/그리고 또 마음 그대 마음’
―3월 23일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로 데뷔
서태지와 아이들은 대중문화의 중심축을 10대로 완전히 옮겨 놓았다. 스스로 노래를 만들어 냈고 패션, 안무, 메시지를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했다. 이전 세대에서 팝, 록, 포크에 그친 서구 음악의 유입을 힙합, 전자음악에 이르기까지 광폭으로 넓혔다. 한국 유행 음악은 비로소 세계 주류 음악과 동시대성을 획득했다. 이들은 사회 비판과 통일 문제 등 메시지를 계속 갱신했다. 기성세대는 주류 음악의 빠르기와 음향을 견뎌 내지 못하고 밀려났다. 이런 흐름은 H.O.T. 젝스키스 같은 아이돌 댄스그룹의 등장으로 더 거세졌다.
[1995년]민주화 바람 타고 TV에 등장한 5·18
“나 떨고 있냐”(태수) / “아니”(우석) / “그게 겁나. 내가 겁낼까 봐”(태수)
―2월 16일 드라마 ‘모래시계’ 종영
‘여명의 눈동자’(1991년)의 김종학 PD와 송지나 작가 콤비가 선보인 드라마 ‘모래시계’(1995년)는 ‘귀가시계’라는 신조어를 낳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20부작 평균 시청률은 43.2%. 직장인들의 빠른 귀가로 술집 매출이 줄자 ‘모래시계 불황’이라는 말도 나왔다. ‘모래시계’는 정치 폭력, 카지노 비리, 5·18민주화운동 등 민감한 소재를 정면으로 다뤘다. 당시 영화와 드라마는 1987년 이후 민주화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동시에 삼성영상사업단의 자본과 배급력이 집결된 ‘쉬리’처럼 대기업 투자를 받은 영화 제작자들이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내놓으며 흥행에 성공하기 시작했다.
[2004년]국경 넘은 아이돌, 케이팝 월드로
‘하루만 너의 고양이가 되고 싶어 Oh Baby/니가 주는 맛있는 우유와 부드러운 니 품안에서’
―1월 14일 동방신기 ‘HUG’로 데뷔
대중문화의 헤게모니는 치밀한 기획력을 갖춘 대형 연예기획사의 손으로 넘어갔다. ‘동방의 신이 일어난다’…. 넉 자짜리 이름과 한자로 된 팀명엔 처음 해외시장을 향해 기획된 아이돌이란 정체성이 녹아 있었다. 오랜 연습생 생활로 춤 노래 연기 등 종합적인 능력을 다진 이들은 체계화된 제작과 마케팅 시스템의 산물이었다. 아이돌 산업은 마침내 해외시장 진출을 이뤄 냈고 케이팝 월드를 탄생시켰다. 2011년 프랑스 파리 SM타운 콘서트,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 붐은 세계로 산개된 팬덤과 그들을 잇는 소셜네트워크, 유튜브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2004년]1000만 관객 응원에 한국영화 부활
영화 ‘실미도’ 1000만 관객 돌파
―2월 19일
영화 ‘실미도’가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어 한 달도 되지 않아 ‘태극기 휘날리며’가 두 번째 1000만 영화가 됐다. 동시에 한국 영상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임권택 감독은 ‘취화선’(2002년)으로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올드보이’(2003년)가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김기덕 감독이 2004년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KBS 드라마 ‘겨울연가’(2004년)가 한국 드라마 최초로 일본 공영방송 NHK에서 방영된 후 일본 열도에 욘사마 열풍을 일으키며 한류의 첫 장을 열었다. MBC 사극 ‘대장금’은 미주, 중남미, 유럽 전역으로 수출되며 한류의 저변을 넓혔다.
[2007년]“국민예능, 안 보면 대화가 안 통해”
‘무한도전’은 어느덧 미운 오리새끼에서 백조로 변해 있었다.
―본보 9월 28일 자
MBC 예능프로 ‘무한도전’은 한국 최초의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표방하며 ‘평균 이하’의 멤버들이 매주 ‘형식 없는 형식’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당시 스타를 섭외해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하던 예능 판도를 뒤집었다. 방영 후 포털사이트에서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자주 차지했다. KBS ‘1박2일’ 또한 인기를 끌었다. ‘무한도전’보다 폭넓은 시청자층을 확보하며 ‘국민예능’의 칭호를 얻기도 했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씨는 “‘무한도전’이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을 국내에서 처음 선보였다면 ‘1박2일’은 대중에게 폭넓게 사랑받았다”고 평가했다.
도움말 주신 분=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조준형 한국영상자료원 연구부장, 최규성 대중음악평론가, 최양락 개그맨
문화부 대중문화팀
http://news.donga.com/Main/3/all/20150815/73057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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