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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만사 ▣/이런일 저런말

새해 첫 두레박으로 ´용의 알´을 떠오셨나요

by 세월따라1 2010. 1. 1.
섣달의 마지막 남은 달력이 새해가 다가오는 것을 알리면 다사다난했던 묵은해를 뒤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새롭게 전개될 밝은 새해에 기대를 걸게 되는 것이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이다.

옛날도 지금과 같아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과정을 납일(臘日), 제석(除夕), 세수(歲首)의 세 과정으로 나누었다.

일 년의 마지막 날을 ‘납일’이라고 한 것은 섣달을 납월(臘月)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납일은 섣달 그믐날이 아니라 동짓날부터 세 번째 미일(未日)로 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임금님이 계시는 대궐에서는 이 납일에 일 년을 뒤돌아보고 매듭을 짓는 제사(臘享)을 지내고 여러 가지 부대행사를 거행한다.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청심환’, ‘소합환’과 같은 좋은 구급약을 만들어서 임금님에게 올리면, 임금님은 그 약을 국가원로들에게 하사하여 지난 일 년 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는 등 군신간의 신뢰를 돈독히 하는 아름다운 관행도 있었다.

납일에 내리는 눈을 ‘납설’이라고 했기에 ‘납설’을 녹인 물을 납설수(臘雪水)라고 했다. 이 납설수를 수건에 적시면 잡균이 없어진다고 믿었고, 장독에 넣으면 장맛이 변하지 않으며, 눈병을 앓는 사람들의 눈에 넣으면 안질이 말끔히 가신다고 믿었다.

제석은 오늘날과 같은 섣달 그믐날을 말한다. 제석을 맞으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빚을 갚는 일이다. 이날 묵은 채무를 청산하지 않으면 정월 보름까지 빚 독촉을 못하기 때문에 돈을 꾸어준 사람보다 꾸어 쓴 사람들이 솔선하여 빚을 갚았다는 기록이 우리를 흐뭇하게 한다.

 

 

◇ 옛날 세시풍속엔 그믐날 밤엔 경건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기 위해 잠을 자지 않았고 용이 그 시각에 마을 우물에 알을 낳기에 동틀 무렵 첫 두레박으로 ´용알 뜨기´ 풍습이 있었다. ⓒ데일리안

섣달 그믐날에는 ‘묵은세배’를 다닌다. 묵은세배는 이웃 어른들을 찾아뵙고 지난 한 해 동안에 베풀어주신 은혜로움에 감사를 표시하는 것이므로 설날의 새해 인사보다 더 소중히 여겼다.

또 그믐날에는 방, 다락, 부엌, 광 등 모든 공간에 환하게 불을 밝혀서 잡귀의 근접을 막으며, 경건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잠을 자지 않았다.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시어버린다고 하면서 어린아이들에까지 경건한 새해를 맞게 했다. 자정 무렵이 되면 대궐에서는 마지막 날의 예포라 하여 연종포(年終砲) 108발을 쏘았다.

세수(歲首)는 연수(年首)와 함께 설날이라는 뜻이다. 설날은 신일(愼日)이라고도 한다. 문론 경건하고 신중하게 처신해야 하는 날이라는 뜻이다.

설날의 풍속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용 알 뜨기’가 아닐 수 없다. 용(龍)이 섣달 그믐날 밤에 동네의 우물에 알을 낳고 간다는 전설에 따라, 부지런한 며느리들은 그 용의 알을 떠오기 위해 먼동이 터오를 무렵에 우물로 나간다.

새해의 첫 두레박으로만 용의 알을 뜰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첫 두레박질을 한 사람은 반드시 우물에 다녀갔음을 알리는 짚 오라기를 띄워서 뒤에 온 사람의 수고를 덜어주었다. 부지런하고 경건한 새해맞이가 아닐 수 없다.

새해의 세배풍속에도 배울 만한 것이 많다. 사대부가에서는 섣달그믐이 되면 대문에 세함(歲函)이라고 불리는 광주리를 내건다.

새해의 인사(세배)를 온 사람들이 자신이 다녀갔음을 알리는 쪽지를 담을 광주리다. 요즘말로 하면 세배를 받아야 할 명망가의 대문에 매달린 광주리에 명함을 넣고 가면 세배를 마친 것이 된다.

이렇듯 시간과 낭비를 줄이는 지혜롭고 아름다운 세시풍속(歲時風俗)이 오랜 세월동안 변치 않고 전해진 것은 세배를 받아야 할 고위관직이나 평소에 남의 존경을 받는 선비들이 스스로 세함바구니를 대문밖에 내거는 것으로 자신이 거느린 수하들이나 제자들에게는 시간과 경비를 절약하게 하고, 집안의 식솔들에게는 번거로운 고통을 덜어주는 따뜻하고 어진마음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망상 같은 염원이지만, 국무총리나 정당의 총재를 비롯한 큰 기업의 회장님들이 옛날에 무한히 존경받았던 고위관직이나 참된 선비들의 흉내만이라도 낼 줄 안다면 우리네 힘없는 백성들에게는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

글/신봉승 극작가

 

원문보기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183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