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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만사 ▣/이런일 저런말

美 전문기자 ‘김연아는 매력종합세트’

by 세월따라1 2010. 3. 2.

“김연아는 매력종합세트… 100년에 한번 나올 완벽한 선수”

“오서 코치 공도 크지만 안무가 윌슨 역할에 주목해야
곽민정 유심히 지켜봐… 10년 내 정상급 선수로 클 것”

“김연아는 너무 완벽해서 도저히 결점을 찾을 수 없다.”

“현역 선수 중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선수는 딱 하나, 김연아다.”

“김연아는 여느 선수들과는 다른 리그에서 뛰는 것 같다.”



 


미국 예일대를 졸업하고 20년 넘게 스포츠 현장을 지키며 퓰리처상 후보에 네 번이나 이름을 올린 베테랑 기자. 피겨스케이팅 최고 권위자 가운데 한 명. 28일 피겨 갈라쇼가 열린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콜리시엄에서 만난 미국 시카고 트리뷴의 필립 허시 기자는 “김연아는 종합세트(the whole package)다. 지금까지 이런 선수는 없었다”고 극찬했다. 밴쿠버=박영대 기자
국내 언론에서 나온 말 같지만 아니다. 바다 건너 미국의 한 기자가 ‘피겨 여왕’ 김연아(20·고려대)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쓴 문장들이다.

미국 10대 신문 중 하나인 시카고트리뷴의 필립 허시 기자(63). 피겨스케이팅을 좋아하는 국내 팬에게는 이미 익숙한 이름이다. 2, 3년 전부터 김연아가 각종 대회 정상에 서기 시작하면서 그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피겨 팬들은 시카고트리뷴이나 다른 신문에 그가 쓴 김연아 관련 기사나 기고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뜨면 재빨리 번역해서 인터넷에 올리곤 했다. 그는 유난히 다른 외국 기자에 비해 김연아에 대해 많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해왔다. 세계 피겨계에서 김연아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의 영향력도 덩달아 커져갔다.

그는 이번 밴쿠버 겨울올림픽이 9번째 겨울올림픽 취재다. 1980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대회를 시작으로 줄곧 겨울올림픽 현장을 지켰다. 여름올림픽도 6번 참석해 모두 15번 올림픽을 취재한 베테랑 스포츠 기자다. 그는 방송 출연도 잦은 유명 인사다. 미국 CBS의 저녁 뉴스인 ‘더 투데이 쇼’를 비롯해 NBC의 ‘나이틀리 뉴스’, CNN, ESPN, 영국 BBC 등 많은 곳에 출연해 스포츠 기자로서 명성을 높였다.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나 예일대를 졸업한 그는 프랑스어를 전공했고 부전공으로는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를 배워 4개 언어를 구사한다. 1984년부터 시카고트리뷴에서 일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네 번이나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다.

스포츠 중에서도 겨울스포츠를, 그 가운데서도 피겨스케이팅을 가장 좋아한다.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피겨는 음악과 스토리텔링이 선수의 스케이팅 기술과 뒤섞여 하나로 나타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올림픽 기간에 김연아가 다녀간 모든 곳을 쫓아다니며 관련 기사를 쏟아낸 그를 28일 피겨 갈라쇼가 열린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콜리시엄 프레스센터에서 만나 김연아와 한국 빙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당신이 쓴 김연아 관련 기사는 한국에서 유명하다.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금 이야기를 해줘서 알았다. 그렇게 유명한가? 나는 단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선수 가운데 한 사람에 대해서 쓴 것뿐이다. 물론 최근에 내가 김연아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썼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김연아를 빼고 피겨스케이팅, 특히 여자 피겨스케이팅에서 무엇을 쓸 수 있을까?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김연아의 매력은 무엇인가.

“이미 내가 쓴 기사들에서 모든 매력을 말해왔다. 이번 올림픽에서 김연아는 자신이 가진 매력을 모두 보여줬다. 더 보여줄 것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김연아는 스피드와 힘 있는 점프, 물 흐르는 듯한 우아함 등 여자 피겨 선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한마디로 말해 종합세트(the whole package)다. 지금까지 이런 선수는 본 적이 없었다.”

―김연아의 금메달은 피겨 역사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피겨를 하고 있고, 시작하고자 하는 여자 선수들에게 정말 큰 영향을 끼쳤다. 앞으로 10년간 김연아가 얼마나 더 많은 영향을 미칠지는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예전에 내가 기사를 썼듯이 김연아가 정말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빙판을 떠나거나 이젠 라이벌이 없다며 은퇴를 선언하기 전까지는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겨 선수로 남게 될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김연아의 세계 제패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브라이언 오서 코치의 공도 크지만 안무가인 데이비드 윌슨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윌슨이 있어 김연아의 가장 큰 장기인 멋진 점프를 절묘하게 안무에 결합할 수 있었다. 물론 오서 코치가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 것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프리스케이팅 경기가 끝난 뒤 메인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들이 얼마나 멋진 조합인가를 느꼈다. 환상적인 조합이다. 김연아는 이미 자신의 코치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달했다.”

―김연아와 같은 선수가 한국에서 계속 나올 수 있을까.

“참 어려운 질문이다. 김연아는 100년에 한 번 나오는 선수다. 경쟁자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김연아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정상급 선수들이 안타깝다. 한국에도 많은 선수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도 좋은 선수들이 나오겠지만 김연아와 같은 선수가 나올지는 모르겠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녀는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도 특출한 경우다.”

―현재 피겨계에서 김연아의 위치는….

“김연아는 2002년부터 채택된 신채점제를 완벽하게 정복했다. 김연아를 위해 이 제도가 도입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압도적인 테크닉과 우아함, 그리고 완벽한 콤비네이션 점프 등은 심판들이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만약 점수를 좀 더 받고 싶은 선수들이 있다면 김연아의 연기를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 완벽하게 짜인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김연아에게 부족한 점을 지적한다면….

“하하. 참 어려운 질문이다. 지금도 완벽한 선수에게 부족한 점을 지적한다는 것은 나에게 완벽하게 완성된 자동차를 흠집이라도 내서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잠깐만 시간을 달라. 다른 기술은 흠잡을 데가 없다. 굳이 이야기한다면 김연아의 스파이럴은 지금도 좋지만 좀 더 좋아질 필요가 있다. 발을 좀 더 세우고 다리를 좀 더 폈으면 한다. 스핀도 좀 더 빨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건 아닌지 두렵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금도 완벽하다.”

―김연아와 함께 출전한 곽민정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곽민정의 연기를 유심히 보았다. 분명 뛰어난 기술을 가진 선수다. 앞으로 10년 안에 정상급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곽민정 외에도 한국에는 좋은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언제든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 이번 올림픽에서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한국 쇼트트랙은 20년 가까이 계속 좋은 선수가 있었다. 물론 올림픽에서 성적도 좋았다. 한국이 쇼트트랙 강국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번 올림픽에서 놀라운 것은 스피드스케이팅이다. 이전에도 메달은 땄지만 색깔은 금색이 아니었다. 이번에 정말 좋은 성적을 거뒀다. 어떻게 이런 좋은 선수들이 나올 수 있었는지 나를 비롯한 주위 기자들도 놀라고 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거둔 놀라운 성적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전공 종목이 아니라서 자세하게는 알지 못하지만 뛰어난 지도자와 뛰어난 선수들이 빚어낸 조화라고 생각한다. 사실 한국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이 거둔 성적은 한마디로 놀랍다.”

―빙상 종목에서의 강세는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나.

“한국은 빙상 종목에 강하지만 설상 종목은 갓난아기나 다름없다. 분명 이 점은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의 한국의 선전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에 큰 힘을 실어줄 것이다. 평창이 겨울올림픽을 유치한다면 장기적으로 모든 것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한국의 겨울스포츠 발전을 위해서라도 평창 올림픽 유치는 필요하다.”

―이번 올림픽처럼 좋은 성적을 계속 유지하려면….

“투자가 우선이다. 투자 없이는 좋은 결과도 없다. 한국의 빙상 종목 선전도 투자가 있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좋은 외국인 코치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스키와 크로스컨트리, 봅슬레이 등의 분야에 좋은 코치들을 영입해 선진 기술을 도입하고 투자를 병행한다면 짧게는 몇 년 뒤, 길게는 10년 뒤 이번 올림픽과 같은 성과가 나올 것이다.”

밴쿠버=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 허시 기자의 김연아 관련기사
“회견장 가면서 내달 세계선수권 대비 채점표 점검… 역시 위대한 선수 ”



스포츠면 머리기사를 장식한 필립 허시 기자의 김연아 관련 기사들. 허시 기자는 김연아의 올림픽 우승 소식(위)을 전한 뒤 후속 기사(아래)를 통해 김연아와 과거 피겨 스타를 비교하며 왜 김연아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인지 분석했다. 시카고트리뷴 PDF 화면 캡처
미국 시카고트리뷴지의 필립 허시 국제 스포츠 담당 전문기자에게 이번 밴쿠버 겨울올림픽 취재는 김연아(20·고려대)를 따라가는 여정이었다. 그가 이번 대회 동안 쓴 수십 건의 기사 중 김연아에 대한 것이 가장 비중이 컸기 때문이다.

지난달 23일 쓴 ‘한국과 일본 간의 경쟁심이 스케이팅보다 더 중요하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는 피겨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경기에 앞서 양국 사진기자들의 취재 싸움에 주목했다. “20여 명의 일본 사진기자가 경기 시작 9시간 전인 오전 7시 반에 경기장으로 몰려갔다. 사진 취재가 150명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더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들보다 한국 사진기자들이 이미 도착한 뒤였다.” 그는 양국 간의 뜨거운 자존심 싸움이 20세의 김연아에게 얼마나 큰 압박감으로 작용할지 우려했다.

24일 쇼트프로그램이 끝난 뒤 쓴 기사에선 김연아가 라이벌 아사다 마오의 굉장한 연기 바로 직후 순서여서 엄청난 부담감이 작용했을 텐데도 더 뛰어난 연기를 해냈다고 칭찬했다. “아사다의 굉장한 연기 때문에 관중들이 크게 환호하는 가운데 김연아가 링크장 안으로 들어섰다. 김연아의 연기가 끝났을 때 세계 빙상계는 올림픽 역사상 가장 위대한 두 개의 쇼트프로그램을 잇달아 보았다. 하지만 김연아의 연기가 더 나았다.”

26일 프리스케이팅에 대한 기사는 김연아에 대한 칭송으로 메워졌다. “거슈윈의 경쾌한 재즈풍의 리듬에 맞춰 마치 바람에 날리는 깃털처럼 얼음 위를 날아 다녔다. 전 국민의 금메달 기대에서 오는 압박감을 결연히 버티면서 김연아는 역사에 남을 연기로 경쟁자들의 희망을 꺾어버렸다.” 그는 다른 빙상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육상이었다면 100m를 8초에 뛴 정도의 기록”이라고 비유했다.

허시 기자는 프리스케이팅이 끝나고 3시간 뒤 김연아와 브라이언 오서 코치가 함께 차로 이동하는 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하는 20분간 차 안에서 앞좌석의 오서와 뒷좌석의 김연아는 그날 금메달의 기쁨에만 젖어 있지 않았다. 채점표를 꼼꼼히 살피며 다음 달 세계선수권을 대비해 보완할 부분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이 대화야말로 김연아가 왜 위대한 선수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