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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만사 ▣/이런일 저런말

6·25를 한국전쟁이라 부르는 이들, 그럼 임진왜란은 한일전쟁?

by 세월따라1 2013. 6. 15.

아버지인데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니요. 따져 묻는 길동에게 홍 판서, 냅다 펀치를 날립니다. 이 자식 아버지라 부르지 말랬지. 퍽퍽퍽 스트레이트가 꽂힌 끝에 길동은 바닥에 나뒹굽니다.

그때 길동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아, 아파. 그 말에 홍 판서의 분노 게이지가 급상승합니다. 이 새끼가 이제 퇴행해서 아예 아빠라고 부르네. 그가 아버지란 건 길동이도 알고 홍 판서도 압니다. 그런데 왜 못 불러 안달일까요. 그것은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어야만 현실에서 그 존재가 명확해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도 그 맥락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15년간 우리는 북한을 제대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부르려는 순간 동포니 민족이니 하는 단어들이 앞을 가로막았고 그 순간 실체는 모호해졌습니다.

최근 국정원의 북한 동향 보고서에 '적군(敵軍)'이라는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그전까지는 북한이 스스로를 호칭하는 '조선인민군'이었죠. 상대가 원하는 대로 불러주는 것, 이런 걸 이적 행위라고 부릅니다.

본연의 자세를 되찾아 기쁘고 또 기쁩니다. 시작은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었습니다. 그는 취임 직후 집무실에 당시 인민무력부장 김영춘과 4군단장 김격식의 사진을 걸어놓고 "적장(敵將)의 생각을 읽기 위해서는 항상 얼굴을 마주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또 어떤 도발을 하려고 머리를 굴리고 있을까, 고민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든든하고 멋지지 않습니까.

자신은 군인이며 현재는 전시이니 상대는 당연히 적장이어야 맞는 것입니다. 물론 북한에는 동포가 삽니다. 그러나 그 동포에게 총을 쥐여주고 미제의 각을 뜨고 남조선 괴뢰에게 핵찜질을 안겨주자 외쳐대는 정권이 버티고 있는 한 북한은 적이고 그들의 군대는 동포가 아니라 적군입니다.

6·25전쟁을 '한국전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건 당사자가 아닌 국외자가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주체(대한민국)가 스스로 제삼자의 호칭을 쓰다니 정신분열도 이런 중증이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하자면 임진왜란은 '한일전쟁', 병자호란은 '조청전쟁'이겠네요. 인조 임금과 이순신 장군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십니다.

그리고 전쟁에는 반드시 그 전쟁의 의미와 발발 원인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북한에서는 6·25전쟁을 '민족해방전쟁'이라고 부릅니다. 졸지에 우리는 해방 대상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정확히 그 이름을 불러주어야 합니다. 공식 명칭은 '6·25 김일성 침략전쟁'으로요. 후손을 위해 역사에 남기는 기록은 명증해야 합니다.

작년, 자격은 없지만 혹시 불러준다면 패널로 나가 대통령 후보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된다면 임기 첫해 6월 25일에 어떤 기념행사를 하실 계획입니까.

6·25전쟁은 나라의 정체성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6·25전쟁은 가장 참혹했지만 가장 아름다운 전쟁입니다. 카뮈가 말한 '인간의 위대한 점은 매몰된 한 사람의 광부를 위해 그를 모르는 여러 사람이 기꺼이 목숨을 거는 것'의 전 세계적 확장판이었습니다.

대충 기념식으로 때울 게 아니라 참전한 21개국 정상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고 가능한 한 많은 참전 용사를 초청해서 인간애를 구현한 세계인의 축제로 발전시키면 어떨까요.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에서 누구나 아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에서 이제는 해야 할 도리라고 소생, 감히 생각합니다.

 

 

 

  •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14/2013061401538.html?news_Head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