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과 겐지모노가타리의 나라
일본인에게 섹스는 도덕, 윤리와 무관하다
1천 년 전 궁중 섹스 스토리가 탄생하고, 도쿄대 출신 여성이 AV배우로 활동…
어린이들도 금단 세계로서 성의 동경(憧憬)이 아닌, 생활로서의 성에 일찍 눈떠
일본 십대들을 위한 잡지. 성인 만화와 비교해서 전혀 손색없는 글·사진·만화로 채워져 있다. / 사진·유민호
한국 사회를 특징지우는 키워드 중 하나로 성(性)을 빼놓을 수 없다. 성(性)의 일상화·공론화·상식화가 2015년 평균 한국인의 ‘정상적인’ 사고로 정착되고 있다. 비밀스럽고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얘기로서의 성이 아니다. 밖으로 드러내놓고 만천하에 공개하면서 북소리를 울리는 것이 21세기 한국의 성이다. 2012년 <뉴스위크>는 한국을 1인당 포르노 매출(Pornography Revenue per Capita) 1위국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2006년 기준으로, 1인당 526.76달러를 포르노 관련 비용으로 지출했다고 한다. 2위는 일본으로 156.75달러, 3위는 핀란드로 114.70달러다.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되긴 했지만, 성매매가 도심 골목길까지 파고든 정황을 고려할 때 한국이 포르노 대국 리스트에 끼이는 것은 결코 틀리지 않을 듯하다.
성이란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이 세계 정상급에 속하는 것은 사실이다. 벗고 벗기는 얘기가 대중오락물의 고정스토리로 정착된 것도 이미 오래다. 그러나 일본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닳고 닳았다고 하지만, 일본에 견주면 아직 성의 ‘처녀지(處女地)’처럼 느껴진다. 일본은 성의 천국, 나아가 성에 관한 모든 것이 현실로서 존재하는 곳이다. 포르노 소비대국과 같은 수동적 위상만이 아닌, 포르노의 창조·진화·수출이란 능동적 측면에서도 탁월하다. 신문·방송·인터넷을 통한, 활자나 영상만이 아니다. 성과 관련된 비즈니스나 환경이란 측면에서 한층 눈부시다. 전 세계 그 어떤 나라도 따라 갈 수 없을 정도의 특급 ‘섹스 컨트리(Sex Country)’가 일본이다. 포르노 비즈니스의 대명사인 성인용 비디오(AV)에 관한 일본만의 ‘특별한’ 현상은 포르노 천국의 실상을 증명하는 좋은 본보기다.
인구 200명 중 한 명이 AV배우
도쿄 국립현대미술관 앞에 서 있는 조각상.
성에 관한 일본인의 의식과 관점을 표현한 작품으로 와 닿는다. / 사진·유민호
“일본 국내의 성인용 비디오의 제작 건수는 인터넷 배급과 개인용 비디오를 포함할 경우, 연간 약 3만5천 개에 달한다. 단순히 계산해도 하루에 100개 정도가 출시된다. 신인 AV배우의 경우 1년에 2천~3천 명이 데뷔한다. AV 제작 건수와 신인 AV 배우의 수를 감안할 때 AV 종사자가 대략 15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관련 업계는 분석한다. 일본에는 15세부터 55세까지 여성의 수가 3천만 명 정도다. 3천만 분의 15만은 200명 당 1명에 해당한다. 어린이와 노년기에 들어가는 여성을 제외할 경우 대략 200명에 1명의 AV 종사 여성을 가진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의 플레이보이지(誌)에 해당되는 <주간 포스트(週刊 ポスト)>의 2011년 12월 23일 특집기사에 실린 내용이다. 성인 비디오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일본만큼 AV배우가 많은 나라도 드물 듯 하다. 비디오에 등장하는 여배우의 수가 엄청나다. 매일 새롭게 바뀌는 AV의 종류와 수에 압도되기도 하지만, 어떻게 해서 저렇게 많은 ‘뉴페이스’가 매일 등장하는지 놀랍고 신기하다. 수요가 얼마나 많기에 저토록 많은 AV배우가 활동하는지, AV배우 희망자를 어떻게 발굴해 촬영에 임하는지, AV배우 주변의 친척이나 친구들과 어떤 식의 관계를 유지해나가는지 등등.
출연자는 여성의 경우 10대부터 60대, 남성도 20대부터 89세 현역 배우까지 거의 모든 세대에 걸쳐 있다. 출신 배경이나 직업도 다양하다. 돈만이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AV 세계에 뛰어든 이도 적지 않다. 대학생은 기본이고, 텔레비전 방송국의 탤런트나 아나운서 출신, 자위대 군인 출신 등 사회적 지위와 무관한 곳이 AV 세계다. 스펙은 취직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AV 종사자도 나름대로의 특별한 개성이나 배경을 필요로 한다. 결론적으로 볼 때 일본 여성 200명 중 1명이 AV 종사자라는 분석은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한 ‘믿을 만한 통계’로 와 닿는다.
상대적인 표현이지만, 한국을 성의 처녀지라 말한 가장 큰 이유는 성을 둘러싼 국민적 ‘인식과 의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을 대하는 전통·도덕·윤리 전반에 있어서 일본은 한국을 압도하는 슈퍼 선진국이다. 지난해 말부터 화제가 되고 있는 스즈키 스즈미(鈴木?美)란 AV배우의 경우를 살펴보자. 본명 사토 로리(佐藤るり)로 1984년생이다. 명문 게이오(慶應) 대학 환경정보학과를 졸업한 뒤, 도쿄(東京)대학원에서 정보학을 공부한다. 이후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사의 기자로도 일한, 일본 최고 엘리트에 속하는 여성이다. 아버지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프로이드 정신심리학의 권위자로, 도쿄 내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스즈키 스즈미는 AV 활동과 더불어 베스트셀러 미인 작가로도 유명하다. 2013년, 이란 책을 출간했고, 뒤이어 인터넷 웹페이지 연재한 글을 모은 <유방은 숨쉬기 위한 근육이기도 하다(お乳は生きるための筋肉です)>란 책을 내기도 했다. AV배우로 일하면서 경험한 것을 정신 심리학적, 사회학적 관점에서 풀어낸 책들이다.
한국의 성이 아무리 고공행진을 한다고 해도 스즈키 스즈미와 같은 AV배우가 나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집안 좋고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으며, 스펙·얼굴·몸매에 자신 있는 여성이 AV배우로 나간다는 것을 한국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서울대 출신 연예인을 특별하게 다루는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이 중시 여기는 모든 가치관을 넘어선, 또 다른 세상의 ‘기준’에 의거해 살아가는 여성이 일본의 AV배우다.
근친상간에서부터 시작된 <겐지모노가타리>
중국인 손님을 위해 매장 앞에 서 있는 기모노 차림의 일본 여성들.
중국어를 배워 필자에게도 중국어로 인사했다. / 사진·유민호
성에 대한 일본적 상식이 한국을 ‘압도’한다고 할 때 그 원인이나 배경은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여러 가지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겠지만, 일본 최초의 고대소설이 그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판단된다. 일본인이 전 세계에 자랑하는, 장편 역사서이자 서사시 왕조사에 해당되는 <겐지모노가타리>가 주인공이다. 1008년 헤이안시대(平安時代)에 처음 등장한 소설로, 200자 원고지 5천 매 정도로 구성된 전부 54편으로 연결된 초대형 장편 스토리다. 작가는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란 이름의 여성으로 궁중에서 일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1008년 발간 서적과 더불어, 시대에 따라 각종 수정판이 속속 등장하면서 스토리도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배경은 교토(京都)다. 등장 인물은 전부 500명에 달한다. 소설의 핵심은 한마디로 말해 주인공인 ‘히카루 겐지(光源氏)’의 여색(女色)에 있다. 가공의 왕인 기리츠보테이(桐壺帝)의 둘째 아들 히카루 겐지가 벌인 수많은 여성과의 섹스 체험담이 <겐지모노가타리>의 주된 내용이다.
왕이 될 꿈을 진작에 버린 겐지는 십대 나이에 들어서기 무섭게 성에 눈을 뜬다. 놀랍게도 첫 번째 상대는 새엄마이자 아버지의 부인이다. 당시 17세다. 일단 여자 맛을 알게 된 히카루 겐지는 이후 주변에 보이는 모든 여성과 관계를 맺는다. 젊은 부인만이 아니라, 60세 궁녀와 열 살 어린이도 포함된다. 신분은 왕족, 귀족, 궁궐 내 여성만이 아니라 평민이나 하녀에다 근친상간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작가 무라사키 시키부는 여성 특유의 섬세한 시점으로 히카루 겐지의 세속적 유희를 묘사한다.
소설 속의 심리와 상황에 관한 묘사나 감각은 21세기 문학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철부지 왕자의 섹스 스토리로서만이 아니라, 인간과 인생의 음과 양을 문학적, 철학적으로 기술한 책이 <겐지모노가타리>의 정수다. 여성을 성의 도구나 노예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탐구하는 대상으로서 해석하는 ‘고상한’ 여성관도 잘 묘사돼 있다. 여성들 간의 질투라든가, 원치 않은 출산을 둘러싼 고민, 궁중에서 벌어지는 백인백색의 행태도 사실적으로 기술돼 전달되고 있다.
일본 최고의 걸그룹 AKB48은 에도 당시의 유곽문화를 21세기판으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주로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어린 티가 나는 여성을 멤버로 한다. / 사진·유민호
그러나 1천 년 전 소설의 진짜 맛은 이성이나 가슴으로서의 스토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성이라는 원초적 본능에 호소하는, 노골적이고도 담대한 스토리 전개와 묘사가 일본인의 관심을 끄는 진짜 이유다. <겐지모노가타리>가 성을 대하는 일본인의 전통·도덕·윤리의 배후로 지목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잘 알려진 대로 한국 최초의 고대소설은 15세기에 쓰여진 김시습의 <금오신화>다. 일본에 비해 400년 뒤에 만들어진 한문 단편소설로 전부 5편이 전해지고 있다. 여자귀신과의 사랑얘기와 하늘나라 선녀와의 유희, 바다 용왕과의 사랑, 염라대왕과의 대화가 주된 내용이다. 금오신화라는 제명(題名)에서 보듯 귀신이나 용왕, 염라대왕 같은 신화적 요소가 강하다. <겐지모노가타리>와 같은 세속적 가치관과 판이하게 다른, 인간 밖의 세상을 그린 것이 한국 고대소설의 출발이다. 신화적 내용이 그러하듯 금오신화를 읽으면서 사실적, 노골적 묘사를 기대할 수는 없다. 뭔가 교훈적이고 따르고 섬기는 대상으로서의 스토리다.
이에 비해 11세기 초 등장한 <겐지모노가타리>는 성을 주제로 한, 성으로 이어지는 섹스 스토리다. 소설은 픽션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위치와 인생의 의미를 픽션의 세계를 통해 재음미하자는 것이 소설의 의미이자 가치다. 일본은 그 같은 세계관의 출발점을 성에서 시작한다. 한국은 귀신·선녀·용왕·염라대왕에서 출발한다. 이웃나라라고 하지만, 얼마나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근거가 이미 수백 년 전에 창조됐다.
초·중·고 학생부터 읽는 성(性) 필독서
연애소설, 섹스 스토리로서의 <겐지모노가타리>는 발간 이후 1천여 년 동안 계속된 베스트셀러였다. 일본인들은 성경 외에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출간된 베스트셀러라는 해석도 붙인다. 발간 이래 일본인 모두가 읽고 즐기는 국민소설로 자리잡았다는 의미다. 문학비평가의 손에 의해 저울질되는 1천 년 전의 낡은 소설이 아닌, 남녀노소 누구나 읽는 국민고전이 바로 <겐지모노가타리>다. 성적인 묘사가 노골적이라는 점에서 어린이가 읽을 수 없는 소설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아마존닷컴재팬(amazon.co.jp)에 들어가 키워드로 겐지모노가타리, 어린이(子供) 두 단어를 넣으면 7권의 책이 나온다. 겐지모노가타리, 청소년 두 개의 키워드를 넣으면 4942권의 책이 등장한다. 이들 책은 섹스 스토리로서의 책이 아니다. 고전으로서의 역사서, 남과 여의 관계, 왕과 신하의 의리, 헤이안 시대의 궁중예법과 귀족들의 생활방식 등을 이해하는 타임머신 스토리로서 어린이와 10대 청소년들에게 읽히는 것이다.
이들 책은 활자만이 아니라 만화·영상·노래를 통해서도 전달된다. 일본의 어린이들은 성인 못지않게 일찍부터 성에 눈을 뜬다. 금단의 세계에 대한 동경(憧憬)으로서의 성이 아니라, 생활로서의 성이다. ‘동네의 냉장고’라는 편의점에 가보면 성에 관한 노골적인 잡지나 화보가 구석에 꽂혀 있다. 하굣길의 중·고등학생, 나아가 초등학생들이 구석에 모여 내용을 훑어보는 것은 일본적 풍경 중 하나다. 따라서 어린이용으로 나오는 고전이나 교양으로서의 <겐지모노가타리>가 어떤 책인지는 초·중·고 남녀 학생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겐지모노가타리>를 통해 남녀간의 성을 학문적, 나아가 합법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셈이다.
19세기 자포니즘 붐이 일 당시 게이샤는
유럽인이 가장 관심을 갖던 분야다. / 사진·유민호
<겐지모노가타리>는 초·중·고 학생의 교양 고전으로서만이 아니라, 성인 일본인의 인생 교과서로도 활용된다. 1천 년 전의 소설만이 아니라, 현대판 소설로 각색된 겐지모노가타리 스토리가 활자나 만화,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재등장한다. 아마존닷컴재팬에서 팔리는 겐지모노가타리 관련 서적 영상물은 전부 5천여 건이다. 읽고 보는 대상으로서만이 아닌, 입고 먹고 느끼는 겐지모노가타리도 넘치고 넘친다. 당시에 입던 의상, 히카루 겐지가 먹었던 음식의 조리법, 당시 유행했던 귀족들의 취미 같은 것들이 일본인들의 관심사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겐지모노가타리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역시 섹스 스토리에 관한 부분이다.
<겐지모노가타리>의 주인공은 왕이 될 수 없는 왕자다. 궁중에 사는 높은 지위의 왕족이기는 하지만, 한계를 가진 인물이란 점에서 보통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캐릭터다. 동병상련으로서의 <겐지모노가타리>인 셈이다. 보통 사람들은 권력이나 돈과 무관하다. 히카루 겐지는 보통사람들에게 섹스만이 인생의 유일한 행복이란 교훈을 알려주는 롤 모델에 해당된다.
단순히 성에 눈뜨거나, 관심을 갖는 정도가 아니다. 히카루 겐지처럼 근친상간도 마다하지 않는, ‘막장 섹스’로서의 집착이다. ‘도덕, 윤리를 떠나, 성과 관련된 모든 사고와 행위가 가능하다’는 의식이 일반인에게 정착된 것이다. 보통사람들도 마치 스스로가 히카루 겐지가 된 듯한 착각 속에 빠지면서 성에 집착하게 된다. 1천 년은 인간이 가진 의식 DNA를 바꾸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1천 년 동안 베스트셀러로 팔려온 <겐지모노가타리>를 통해 일본인의 성의식이 자유분방하게 흘러간다.
춘화 우키요에에 대한 세계적 관심
춘화 우키요에는 세계 역사상 그 어떤 나라,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노골적이고도 대담한 내용으로 장식돼 있다. / 사진·유민호
일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키요에(浮世?)란 장르의 그림을 알고 있을 것이다. 목판으로 찍어내 대량으로 판매하는 그림이다. 16세기, 현재의 도쿄인 에도(江?)를 기반으로 탄생된 화풍(畵風)이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린, 자포니즘(Japonisme)의 상징이기도 하다. 후지(富士)산을 삼키려는 듯한 큰 파도 그림은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 가장 잘 알려진, 혹사이(葛飾北?)가 남긴 우키요에다. 우키요에가 유럽에서 인기를 끈 것은, 일본 특유의 풍류·색상·구도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확장과 함께 전 세계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있던 시기가 19세기 유럽이다. 고흐는 당시 유럽에 수입된 우키요에를 모사(模寫)해 작품으로 남기기도 했다.
풍속화라고도 불리는 우키요에의 영역은 인간만사의 모든 것을 포함한다.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일본의 오페라에 해당되는 가부키(歌舞伎), 후지산과 같은 자연, 거리·건물의 풍경, 역사서 중의 한 장면, 미인화, 동물이나 곤충…. 250여 년 동안 지속된 에도시대는 ‘상(商)’의 시대이기도 하다. 돈이 되고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도쿠가와 막부(?川幕府)의 보호 아래 용인됐다. ‘문(文)’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비즈니스를 억제한 조선과 달리, 세금만 철저히 내면 아무 문제 없던 나라가 에도의 일본이다. 돈에 의한, 돈을 위한, 돈의 체제와 문화가 16세기 이후 지금까지 이어진 일본의 모습이다. 경제동물 일본은 하루아침에 탄생된 것이 아니다. 우키요에는 그 같은 일본적 상황을 반영한 증거이자 결과물이다. 부가 축적되면서 사회 전체가 활기를 띠면서 즐겁고 아름다운 시간과 기억을 간직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 같은 욕구를 충족시켜준 상품이, 한 장이 아니라 대량으로 복사돼 저가로 판매된 우키요에다. 현재 전 세계 미술관 어디에 가도 볼 수 있는 우키요에는 당시 밥 한 끼 정도 가격으로 팔리던, 박리다매(薄利多賣) 상품의 대표적인 예다.
문화는 정신의 반영물이다. 성에 관한 일본인의 인식과 의식도 우키요에를 통해 충분히 살펴볼 수 있다. 자포니즘이란 문화 트렌드로 유럽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일본이지만,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특별한 영역’에 대한 유럽인의 관심이 배경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이다. 우키요에는 유럽에 넘어가서도 싸구려 이국 예술품으로 취급된다. 수입이 전무한 고흐조차도 구입해서 방에 걸어둘 정도의 가격이다. 유럽인이 가장 선호했던 우키요에는 후지산이나 가부키 같은 고상한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춘화(春畵)에 관한 관심이 일본 문화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 중 하나이기도 했다. 성을 주제로 한 우키요에다. 일본인이 묘사한 춘화는 유럽인의 상상을 넘어선 문화적 충격으로 확산된다. AV를 처음 접한 10대 청소년처럼, 춘화 우키요에가 주는 대담하고도 노골적인 성애(性愛)장면들이 유럽인들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한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후지산 시리즈가 아니라 춘화 우키요에가 한층 더 고가로 팔린다.
기타가와 우타마루(喜多川歌?)는 춘화 우키요에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이다. 초기에는 미인화로 유명해지지만 이후 풍경화, 역사화 등 우키요에에 관한 모든 장르를 다룬다. 춘화는 그중 일부다. 기타가와의 춘화는 보는 이를 부끄럽게 만든다. 남녀간의 정사장면이 너무도 대담하고 노골적이다. 서커스 동작에 가까운 복잡다단한 체위(體位)를 비롯해, 노골적인 성기 묘사는 기타가와 우키요에의 특징 중 하나다.
도쿠가와 막부를 통해 발전·진화하는 유곽
도쿄의 나이트클럽은 유사 성행위에 관한 법적 제약이 없다.
체모를 보여주지 않는 한 아무리 지나친 성적 관계라도 공연무대를 통해 공개될 수 있다. / 사진·유민호
농담 같은 진담이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유럽인들은 일본 남성 성기의 크기를 말(馬)의 수준에 필적한다고 믿었다. 이유는 우키요에 때문이다. 그림 속에 남성의 성기가 하나같이 ‘초대형’으로 그려진 탓에 일본인을 만나면 성기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장 궁금해했다고 한다. 일본 남성이 화장실에 가면 뒤따라가서 확인하려 한 것이 태평양전쟁 이전 유럽인들의 일본관이었다.
춘화로 표현하는 인간의 욕구는 일본만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로마시대는 물론, 르네상스 이후에도 볼 수 있는 일상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일본 우키유에에 비교할 때 서방의 춘화는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정부(情婦)의 얼굴과 몸매를 비너스로 가장해서 그리는 것처럼, 간접적인 묘사를 통한 것이 유럽 춘화의 주류다. 소비층은 사회 일부의 권력자나 부자들에 국한된다. 우키요에는 다르다. 보통 일본인 대부분이 즐긴 것이 우키요에이고, 춘화는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비밀스런 일상’에 해당된다.
춘화 우키요에는 막부정권의 별다른 제재 없이 보통 일본인에게 퍼져나간 서민문화의 일부다. 남녀상렬지사(男女相悅之詞)라 해서 활자 속의 성풍속조차 금기시했던 조선의 모습과는 180도 다르다. 어떻게 해서 그토록 적나라한 성풍속화가 서민문화로 정착될 수 있었을까? 멀리 보면, 1천 년 전의 소설 <겐지모노가타리>에서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가까이는 에도시대 초창기의 ‘특별한 상황’이 가장 큰 이유라 볼 수 있다. 유곽(遊廓)문화다. 한국에서 집창촌이라 불리는 공인 집단 사창가가 유곽이다. 일본에서 유곽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584년이다. 당시 실력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법령으로 만들어 자신의 기반인 오사카(大阪)에 만든다. 이후 교토와 에도로 확산된다. 각 도시에 하나만이 아니라, 여러 개씩 지역 별로 구축된다.
매춘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고 한다. 도덕·윤리·종교적으로 볼 때 돈을 위해 몸을 파는 일은 결코 미화될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은 아예 장소를 지정하고, 법적으로 보호하면서 풍기를 단속하고 세금을 받아들이는 문화의 일부로 발전시킨다. 필자가 아는 한, 인류 역사상 국가적 차원에서 공창제도를 적극 도입하고 발전시켜나간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공창제도를 받아들인 나라는 많다. 그러나 대부분 필요악 수준으로 거리를 두고 가려두자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처럼 아예 공창제도를 장려하면서 세금을 끌어모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결과적으로 매춘을 지지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 유곽이 일본 문화의 하나로 발전하게 됐을까? 이유는 성비율(性比率)의 비정상, 즉 남성에 비해 여성이 엄청나게 많았던 시대상황에 있다. 도쿠가와 막부가 열도를 통일해 에도시대를 열 당시, 일본 열도는 여자들로 넘치고 넘쳤다. 무려 100년 이상 내란이 계속되면서 성한 남성들은 전쟁터에서 사라진다. 과부나 결혼을 못한 여성들의 도시행이 일상화된다. 팔려가는 신세로 도시로 들어온 여성도 많다. 대부분은 유곽으로 넘겨진다.
1721년 에도 인구는 약 51만 명. 성별 비율을 보면 남성이 64.5%, 여성이 35.5%이다. 남성이 절대 부족한 나라가 일본이기도 하지만, 도쿠가와 막부를 지키는 사무라이들과 지방에서 올라온 영주들과 부하들로 인해 남성들이 한층 더 넘치게 된다. 유곽 문화는 그 같은 남성초과 도시에 나타난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매춘만이 아니라, 음식·음악·다도·그림과 같은 ‘유(遊)’에 관한 모든 것이 유곽을 통해 제공됐다. 우키요에는 그 같은 문화 중 하나다. 21세기 들어 당시 유곽 문화가 예(藝)로 승격된 상태지만, 에도의 유곽은 생존과 돈의 현장에 불과했다. 대략 12세에 팔려가, 하루에 최소한 다섯 명의 손님을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던 시대가 18세기 에도다.
군대에 앞서 동남아에 진출한 ‘애국 낭자군(娘子軍)’
유곽문화는 이후 19세기 말 해외로 진출한다. ‘가라유키(唐行き)’라 불리는 여성들이다. ‘가라(唐)’라는 말은 외국이란 의미다. 외국에 가는 원정 매춘여성이 가라유키다. 개방 후 19세기 말 일본은 인구 폭발 시대에 접어든다. 사람 값이 동물보다 못하던 시기다. 돈을 벌고자 10대 소녀들이 외국으로 떠난다. 일본 남부 어촌의 가난한 여성들로, 인도네시아·태국·필리핀과 같은 동남아시아가 주된 범주다. 손님은 네덜란드·영국·미국과 같은 서방 식민지 경영자와 군인들이 주류지만, 현지 동남아인도 받아들였다. 당시 1인 당 하루 평균 스무 명 정도의 손님을 받아냈다고 한다. 이들의 해외 원정매춘은 1920년 정부가 법적으로 출국을 금지할 때까지 지속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제국군대는 가라유키 여성들을 일본군의 동남아 진출에 앞선, ‘애국 낭자군(娘子軍)’으로 찬미하기도 한다. 이들 덕분에 동남아에 관한 정보를 상세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에 관한 일본인의 방만한 사고는 2차대전 동안 종군위안부란 희한한 제도로 발전된다. 군을 따라다니면서 위안을 행하는 여성이라는 의미지만, 사실상 군을 위한 성노예라 볼 수 있다. 국가가 강제로 시행한 제도인지 여부를 두고 한·일간의 공방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일본의 역사나 구조를 보면 국가나 공적기관이 개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종군위안부가 탄생됐다고 보기 어렵다. 일본은 모든 것을 횡적·종적으로 조직화하는 나라다.
종군위안부와 관련해 주목할 부분은 한·일의 인식차다. 성에 관한 의식구조를 볼 때 한·일 양국이 보는 종군위안부에 대한 시선은 크게 다르다. 한국에 비교해 볼 때, 종군위안부 자체에 대한 일본인의 거부감은 크게 미미하다. 도덕·윤리·전통보다 국가와 조직을 앞세우는 것이 일본인의 가치관이다. 차별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전쟁 때 고생했던 사람들이란 범주 속에 들어갈 뿐이다.
한국은 다르다. 유교문화를 근간으로 하기에 성을 죄악시하고 비밀스럽게 생각하는 가치관에 젖어있다. 일본인이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의식과 인식이 한국인에게 존재한다. 국가의 강제성 여부를 둘러싼 이견이 계속되고 있지만, 사실 한·일 간에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가장 큰 인식차는 바로 종군위안부 자체를 대하는 시각에 있지 않을까. 1천 년 전에 이미 궁중 섹스 스토리가 탄생되고, 도쿄대 출신의 명문 엘리트 여성이 AV배우로 활동하는 나라와 근본적으로 다른 곳이 바로 한국이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 일본인의 성문화를 거북하고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한국이지만, 실상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어제의 일본을 베끼고, 오늘의 일본을 따라가기에 바쁜 모습이다. 사람을 동물처럼 세워서 손님에게 고르도록 만드는 집장촌의 구조, 둘째 손가락을 입주변에 올리면서 배시시 웃는 모습, 성관계는 갖지만 키스는 허용하지 않는 매춘, 집단으로 이뤄지는 성행위 등등 한국에 직수입된 이 모든 성문화는 이미 에도시대 때부터 일상화된 일본 특유의 성풍속도다. 언제부턴가 과거 일본이 행했던 해외 원정매춘도 따라 하는 것이 21세기 한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종군위안부를 둘러싼 한국인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한 방안은 법적·외교적 해결에 국한되지 않는다. 극단으로 치닫는 일본의 성문화를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는, 품격으로서의 도덕·윤리적 가치관 확보가 우선돼야 할 것이다.
글=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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