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병→ 자동차 → 골프채→휴대폰 … 여성들 '킬힐'도 경계대상 1호
판결로 본 ‘위험한 물건’의 진화
상대가 위험 느끼면 모든 게 흉기
생활 나아지며 레저용품 대거 포함
최근 가장 위험한 물건은 자동차
보복운전 가해자도 엄하게 처벌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만든 1등 공신은 1970년 개통된 경부고속도로와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다. 자동차는 현대인의 생활에 유용한 도구인 반면 잘못 쓰면 ‘위험한 물건’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자동차는 범죄나 보복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경찰이 지난달 10일부터 ‘보복운전’에 대한 특별단속을 벌이는 이유다. 요즘 경찰관들에게 “가장 ‘위험한 물건’이 뭐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자동차”라는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보복운전 행위자에겐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폭처법) 제3조 제1항이 적용된다. ‘흉기 기타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그 죄(※폭행·협박·상해 등)를 범한 사람’을 처벌하는 조항이다. 보복운전은 ‘자동차라는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저지른 협박행위인 셈이다. 이 경우 일반적인 폭행·협박·상해 범죄보다 더 엄하게 처벌된다. 벌금형 없는 유기징역형이 선고된다.
'지난 한 해 동안 검찰이 기소한 위험한 물건을 이용한 폭행·협박·상해 범죄자는 9582명이다. 10년 전의 4598건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자동차가 애초부터 위험한 물건이었던 건 아니다. 대법원 판례에 자동차가 처음 ‘위험한 물건’으로 등장한 것은 1984년이다. A씨는 예비군 훈련에 계속 불참했다가 경찰의 검거 대상에 올랐다. A씨가 승용차를 타고 도망가려 하자 경찰관이 이를 저지하려고 보닛 위에 뛰어올랐다. A씨는 500m를 시속 30㎞로 달리다 방향을 틀어 경찰관이 크게 다쳤다. 재판에선 자동차를 ‘휴대’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대법원은 “‘휴대’는 ‘소지’뿐만 아니라 널리 ‘이용한다’는 뜻도 포함된다”며 자동차를 ‘위험한 물건’이라고 봤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로도 한동안 유사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80년 기준 국내 자가용 승용차는 전국에 17만9000대뿐이었다. 숫자도 적었지만 남을 해치는 도구로 삼기엔 비싼 재산이기도 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부터는 판결문에 자동차가 위험한 물건으로 빈번하게 등장하기 시작한다.
폭처법은 원래 일본법이다. 광복 후 사라졌다가 61년 5·16 군사정변 후 그해 6월 20일 국가재건최고회의라는 과도입법기구를 통해 부활됐다. 불안정한 정국에서 발생하기 쉬운 집회·시위를 포함한 야간 폭력행위나 집단 폭력행위를 단속하기 위해 서둘러 입법한 것이다.
그렇다면 ‘위험한 물건’들은 어떻게 진화해 왔을까. 60년대 ‘위험한 물건’은 흉기와 거의 같은 개념으로 사용됐다. 칼·도끼 등 제작 목적 자체가 썰거나 베고 쪼개는 데 있어 생김새가 날카롭거나 뾰족한 물건들이 ‘위험한 물건’의 주류였다. ‘흉기’보다 넓은 외연을 갖기 시작한 건 70년대 들어서다. 상대방에게 던져서 얼굴에 맞고 깨지면서 상처를 입힌 접시·소주병 등이 위험한 물건의 반열에 들어섰다.
대법원이 위험한 물건을 “타인을 해함에 족한 물건”이라고 정의함에 따라 원래 뾰족하거나 날카롭지 않은 물건들도 범주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물건의 성질’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80년대에 현대적 정의가 완성됐다. 대법원은 81년 7월 판결에서 “위험한 물건인지 아닌지는 구체적인 사안에서 ‘사회 통념상 그 물건을 사용하면 그 상대방이나 제3자가 곧 위험성을 느낄 수 있는가’ 판단해 결정한다”고 제시했다. ‘느낌’이라는 주관적인 요인을 법관이 판단해 인정 여부를 가리겠다는 거였다. 이 판결은 통상 위험한 물건으로 인정되던 각목(길이 1m, 직경 5㎝)도 쇠파이프(길이 2m, 직경 5㎝)로 먼저 얻어맞는 상황에서 반격에 사용됐다면 ‘위험한 물건’이 아니라고 본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정당방위적 상황까지 고려해 위험한 물건의 범위를 제한하려고 들여놓은 법리는 오히려 위험한 물건의 범위를 확대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여기에 ‘휴대하여’를 ‘이용하여’로 해석하는 법리와 “범행에 사용하려는 의도로 소지했다면 실제 범행에 사용하지 않았어도 휴대한 것”이라는 판례가 겹치면서 위험한 물건의 범위는 더 확장됐다. 소주병을 들기만 한 채 상대를 발로 차 상해를 입혔다면 폭처법상 흉기휴대 상해죄가 적용될 수 있게 된 것이다.
90년대는 위험한 물건의 전성시대였다. 특히 외환위기 이전까지 소득 증대로 인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골프채, 테니스 라켓, 석궁, 공기총, 야구방망이, 등산용 칼 등 레저·스포츠 용품이 대거 위험한 물건에 포함됐다. 영화에서 구타 용구로 간혹 등장하는 재떨이·프라이팬·소화기 등도 이때 위험한 물건이 됐다.
2000년 이후는 디테일의 시대다. 어지간한 생활용품은 판례를 통해 한 번쯤은 위험한 물건이 됐다. ‘킬힐’의 유행 탓인지 여성들의 전용 무기인 하이힐도 수십 차례 위험한 물건으로 등장했다. 대개 구두를 벗어 남성의 얼굴이나 눈 등을 내리찍은 범죄다.
기술의 발전도 범위 확장에 기여했다. 노트북 컴퓨터로 내리치거나 키보드를 휘두르고 휴대전화를 집어던진 사람들이 ‘위험한 물건’을 휴대한 폭행이나 상해로 처벌됐다. 80년대 나온, 비비탄이 발사되는 장난감 총이 ‘위험한 물건’으로 인정된 것은 최근이다. 최근 장난감 총의 성능이 수m 거리에 있는 유리를 관통할 정도로 개량된 탓이다.
기술의 발달로 위험한 물건에서 벗어난 것도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0부(부장 임성근)는 지난 6월 군대에서 후임병을 다섯 차례 때리는 데 사용한 군용 탄띠가 위험한 물건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검증 결과 신형 탄띠는 전체적으로 매끄럽고 가벼운 장비여서 버클이 달린 구형 탄띠와는 재질과 무게가 현격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요즘 법원이 위험한 물건이 아니라고 한 경우가 오히려 예외에 속한다. 하급심 판결을 보면 지구본·우산·선풍기·벽시계·볼펜·숟가락 등 그 어떤 물건도 폭행·협박·상해의 도구로 사용하면 ‘위험한 물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폭처법 제3조 제1항의 운명도 위험에 처했다. 지난해부터 모두 9건의 위헌법률심판제청과 3건의 헌법소원이 제기돼 헌재가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어서다. 핵심 쟁점은 형법에도 위험한 물건을 이용한 범죄를 처벌할 근거(형법 제261조 특수폭행, 제284조 특수협박 등)가 있는데, 내용은 같고 형량만 높은 폭처법의 존재가치가 있느냐는 것이다. 어느 법으로 처벌하느냐는 검사의 의중에 달려 있는 셈이다. 적잖은 판사들이 “평등원칙에 위배되고 양형재량권을 침해한다”며 위헌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jhim@joongang.co.kr
[S BOX] “중형차 들이받은 소형차는 위험 안 해” 상황 따라 유동적
상대방에게 겁을 주거나 위해를 가할 때 이용한 자동차는 의심할 여지 없이 위험한 물건일까. 법원은 꼭 그렇게 보지만은 않는다. 어떤 상황이었느냐에 따라 결론은 유동적이다.
2004년 이혼소송 중인 아내와 처가 식구가 자신의 아들을 강제로 데려가려 하자 남편이 격분했다. 그는 소형승용차로 장인의 중형승용차를 두 차례 들이받았다. 장인 등은 가벼운 뇌진탕 등 상해를 입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소형승용차는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피해자들이 입은 상처가 경미한 점 ▶갑작스레 아들을 뺏기자 추격하는 와중에 사고가 난 점 ▶작은 차로 큰 차를 들이받았다는 점 등이 감안됐다.
지난달 서울중앙지법의 판단은 달랐다. 고속버스가 A씨의 폴크스바겐 골프 승용차를 추월하려 하자 A씨는 복수심에 수차례 버스 앞에서 급정거를 했다. A씨는 법정에서 “내 차는 작아서 위험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충돌이 없고 버스 탑승자의 부상도 경미했다. 차량 간 크기의 차이는 앞선 사건에 비교하면 훨씬 컸다. 그러나 형사합의 28부(부장 최창영)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무고한 다수 승객의 생명과 안전이 큰 위험에 처했다”며 “A씨의 행위는 위험한 물건을 이용한 ‘협박’”이라고 판단했다.
유리병·칼·당구 큐대·소주병 등의 위험성을 두고도 판례가 일관된 건 아니다. 안 깨진 유리병도 위험한 물건이 될 수 있고 깨진 유리병을 들었다고 늘 위험하다고 보는 건 아니다.
http://joongang.joins.com/article/299/18501299.html?ctg=1200&cloc=joongang|home|newslis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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