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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만사 ▣/이런일 저런말

육지 수조에서 명태 부화 성공… “동해바다 적응훈련중”

by 세월따라1 2015. 11. 1.

 해수부, 국산 명태 되살리기 프로젝트 

 

27일 강원 고성군 ‘강원도 해양심층수 수산자원센터’에서 서주영 해양수산연구사(오른쪽)가 명태의

무게를 측정하기 위해 수조 위에서 뜰채를 들고 있다. 고성=김성모 기자 mo@donga.com

 

 

강당처럼 생긴 큼지막한 컨테이너 건물에선 싱싱한 바다 냄새가 났다. 드르륵 문을 열자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보글보글 거품 올라오는 소리, 쏴 하는 갯물 붓는 소리…. 30개가 넘는 지름 6m의 수조는 그 자체가 ‘탄생’과 ‘생명’이었다. 수조마다 손가락만 한 어린 명태 수천 마리가 힘차게 헤엄치고 있었다. 27일 찾은 이곳은 강원 고성의 ‘강원도 해양심층수 수산자원센터’. 12월 동해에 몸을 맡길 명태들이 인공사육되는 곳이다.

“치어라 아직 손이 많이 가요. 수조가 일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명태 아빠’ 서주영 해양수산연구사의 말이다. 

지난해 2월 해양수산부가 국산 명태 확보를 위해 배포한 포스터.

살아 있는 명태에 ‘사례금’ 50만 원을 걸어 화제가 됐다. 해양수산부 제공

 

 

사라진 명태 

센터가 바다의 명태를 육지에서 키우기 시작한 건 지난해 초부터. 사라진 명태를 복원하기 위해서다.  

국민 생선으로 불리던 명태가 10여 년 전부터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1970년대만 해도 연간 7만 t의 명태가 잡혔다. 하지만 급격하게 어획량이 줄어 2000년대 들어 100t 미만으로 어획량이 떨어지다 지금은 연간 1∼2t 정도만 낚인다. 요즘 밥상에 오르는 명태는 러시아나 일본산이 대부분이다. 

동해바다에서 명태가 사라진 원인은 정확하지 않다. 해수 온도 상승으로 한류성 어종인 명태가 북쪽 바다로 올라갔다는 추론과 함께 남획으로 씨가 말랐다는 말도 나온다. 사실 한국은 명태 알로 만든 명란젓에서부터 술안주로 찾는 노가리(새끼 명태), 얼큰한 동태찌개 등 치어와 성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요리 방법으로 명태를 즐겨왔다.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다 보니 명태가 살아남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정부가 나섰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2월 고갈된 명태를 복원하기 위해 ‘국산 명태 되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명태를 동해에 방류해 어장을 생성하는 것이 목표다. 명태도 처음 방류한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회귀성을 지니고 있다.


 

서주영 연구사가 컴퓨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건강 상태를 확인 중인 어미 명태를 가리키고 있다.

 

알을 받을 어미 명태조차 없었다 

“말이 쉽죠. 정말 힘들었어요. 작년에 한 번 복원에 실패해 이번에는 더 애를 쓰고 있습니다.” 

명태 복원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험난했다. 한국인이 그렇게 많이 먹고 자주 먹던 명태인데 자료가 하나도 없었다. 어떤 온도에서 무엇을 사료로 줘야 하는지 정보가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알을 낳을 어미 명태조차 없었다는 것. 한마디로 닭도 없이 달걀을 부화시켜 병아리를 키울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명태 현상금’. 어민들에게 ‘살아있는 명태는 50만 원’, ‘죽은 명태는 5만 원’의 사례금을 지급한다는 수배 전단을 배포했다. 오전 5시가 되면 제보 전화가 한두 통씩 왔다. 다른 물고기를 잡으려다 함께 잡힌 명태였다. 서 연구사는 “지난해 실수로 전단에 제 휴대전화 번호를 넣었거든요. 지금도 새벽마다 전화가 와서 매일같이 나갑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막상 나가 보니 살아있는 명태는 몇 마리 되지 않았다. 결국 죽은 어미에서 9만4000개의 알을 얻어 인공 수정해 부화시켰다. 기대는 컸지만 두 달도 채 안 돼 모두 폐사했다. 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뭐 당시 기분을 말할 수가 없죠. 팀원들 모두 크게 아쉬워했습니다.”  

서 연구사 팀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다행히 운이 따라줬다. 올 1월 한 어민이 잡은 살아 있는 명태가 알이 가득 밴 어미 명태였던 것이다. 서 연구사는 “조심스럽게 모셔왔죠. 다행히 수컷 명태가 있어서 수조에서 자연부화했습니다”라고 전했다.

명태는 다외산란형 어종이다. 알을 여러 차례 나눠서 낳는다. 이 명태가 12차례에 걸쳐 낳은 알은 무려 70만5000개. 다른 두 마리 죽은 암컷에게서 17만 개를 채취했다. 센터는 부화한 새끼 명태들을 다양한 조건에서 길렀다. 한 수조는 지난해와 같이 수온을 섭씨 5∼6도로 유지했고, 나머지는 7도, 9도 등으로 나눠서 길렀다. 먹이도 이전보다 다양하게 바꾸고 열흘 간격으로 크기를 확인했다.  

서 연구사는 높이 2m가 넘는 수조를 가리키며 “18cm까지 자란 명태가 2만 마리가 넘는다”라고 말했다.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가니 시커먼 아기 명태들이 무리지어 헤엄치고 있었다. 크기가 제법 노가리 티가 났다. 그에 따르면 명태의 크기는 다양하다. 30∼40cm부터 70cm에 달하는 것도 있다고 한다.  


국내산 명태는 이제 고성이 본가  

이 정도면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싶었지만 서 연구사는 취재 내내 성공이라는 말을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명태 자원 회복 가능성에 대해 물었을 때도 굉장히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성공을 장담하기는 이르다는 것이다. 그는 “명태가 다 커서 알을 잘 낳을 수 있을지, 방류를 했을 때 안정적으로 서식지가 생길지 지켜봐야 한다”고 얘기했다.

사실 센터는 지금이 1년 중 제일 한가한 때다. 9월까지 기른 물고기들을 방류하고 11월부터 새로운 종을 기를 준비를 한다. 하지만 서 연구사 팀은 지난해와 올해 명태 때문에 쉬질 못했다. 주말에도 돌아가면서 센터에 나와 명태의 먹이를 챙겨주고 있다. 수조 한쪽에 위치한 20여 평의 사무실에서는 수시로 어미 명태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서 연구사는 “그동안 노력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명태 자원 회복에 성공한다면 앞으로는 고성이 한국 명태의 본적이 될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건물 입구의 반대편 문을 열자 동해바다가 펼쳐졌다. 아기 명태들은 꿈을 꾸고 있을지 모른다. 끝없는 수평선과 깊은 해심을 맘껏 누비는 꿈 말이다. 명태들이 꼬리를 힘차게 친다. 살아 퍼덕거린다. 

고성=김성모 기자 mo@donga.com
http://news.donga.com/Main/3/all/20151031/74514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