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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만사 ▣/이런일 저런말

"한 우물 60년… 그중에 깊은 맛 알려준 영화"

by 세월따라1 2016. 4. 27.

[배우 안성기의 '라디오스타']

누구에게나 삶에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 시대 유명 인사들을 만나 지금의 자신을 만든 뜨거운 시절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ㅡ편집자 주


"나 같은 선배가 있었다면 나는 반대로 갔을 거요."

반듯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국민배우' 안성기(64)는 "절제하고 끼를 억누르는 선배가 앞에 있었다면 내가 튀어 보이려고 난리를 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그의 이름을 딴 CGV상영관 개관식에서는 "진한 불륜 베드신을 남기지 않은 '무(無) 혼외정사 배우'"로 소개받았다. 안성기는 "1970년대 말까지 한국 영화는 암울했다"며 "좀 더 좋은 영화, 의미 있는 배역, 감동 주는 이야기를 고르려 했고 배우로서 대중에게 믿음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술회했다.



안성기는 젊은 시절 실업자 생활을 포함해 8년간의 공백에 대해 "평범하게 살면서 시야를 넓힌 시간"이라고 말했다. "미국 평론가로부터 '톰 행크스 같은 배우'라는 과찬을 들었다"며 겸연쩍게 웃는 모습. /박상훈 기자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해 올해로 연기 생활 60년째. 아역으로 70여편, 성인으로 90여편 등 출연작은 160여편에 이른다. 서울 중구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사장 안성기)에서 만난 이 배우는 "징글징글하기는커녕 연기가 늘 새롭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 사랑을 받았다는 데 감사하고 다가올 하루하루도 기대돼요. 영화는 늘 새로운 세계, 새로운 인물과의 만남이니까. 앞이 늘 궁금해요."

'바람 불어 좋은 날' '만다라' '깊고 푸른 밤' '고래사냥' '하얀 전쟁' '투캅스' '실미도'…. 이 배우는 이런 영화를 지나오며 일찌감치 충무로의 대들보가 됐다. 90년대 말부터 조연도 겸하면서 전성기가 지난 것 아닐까. "나는 계속 전성기라고 생각하는데…"라며 안성기는 웃었다. 절친한 배우 박중훈이 그에게 "형님은 계절로 치면 어떤 계절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음, 이제 가을 됐지."(안성기)

"어, 제가 가을인데?"(박중훈)

"겨울은 겨울대로 좋을 거야."(안성기)
안성기는 "나이 들어도 영화를 생각하는 어떤 크기는 변화가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작을 꼽아달라 했더니 선택의 괴로움을 한참 토로하다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는 '라디오스타'"라고 답했다. "작은 영화였지만 찍을 때 행복했고 관객에게 기운이 전해졌어요. 10년 지났는데 요즘도 가끔 찾아서 봅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사람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영화라서 좋아요." 하고 싶어도 이미지 망가질까 봐 못한 배역은 없단다. 그는 "연기는 폭의 문제라기보다는 깊이의 문제"라고 했다. "폭도 그렇지만 깊이도 끝이 없어요. 배우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무한한 경우의 수가 나옵니다."

흥행 앞에서는 장사 없다. 안성기는 "100번 링에 올랐다 치면 50승25무25패쯤 될 것"이라며 덧붙였다. "훌륭하죠? 25패 중에서도 완전 KO패는 5번 정도요. 웬만큼 당하지 않고는 휘청거리지 않고 싸우자고 덤빕니다." 60년간 TV가 아닌 영화 연기 한 우물을 판 그는 "배우의 열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세"라고 했다. 몰두하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배역을 준비하려면 내 시간이 많아야 해요. 이 생각 저 생각, 아마 자면서도 생각하겠죠.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실마리가 잡힙니다. 관객은 귀신 같아서 속일 수가 없어요. 생각이 축적되지 않으면 순발력으로 연기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건 금방 들통납니다."

안성기는 1992년부터 25년째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일하고 있다. 해외 15개국 구호 현장에 다녀왔다. 영화 '사냥' 개봉을 앞둔 그는 "안주하면서 살다가 그곳에 가면 앞이 보이지 않는 암담함을 느꼈다"고 했다. "지원을 한다고 갔는데 내가 첫 수혜자였어요. 배우로서도 정신이 번쩍 들었죠."


안성기가 대표작으로 꼽은‘라디오 스타’포스터. 가수 최곤(박중훈)의 매니저 역할이었다


[출처]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4/27/20160427004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