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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만사 ▣/이런일 저런말

컬럼비아대 로버트 서먼 교수 - 수덕사 방장 설정 스님 대담

by 세월따라1 2012. 4. 7.

로댕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 많은 바보
생각 비운 반가사유상은 얼굴이 편안하다

 

 

로버트 서먼(왼쪽) 교수와 설정 스님이 수덕사 뒷산 410m 고지에 있는 정혜사 뜰에서 산책하고 있다.

안개비가 자욱한 속에서 두 사람은 우산을 들었다. 봄비는 땅을 적시고, 두 사람의 대화는 마음을 적셨다. [박종근 기자]

 

 

#장면1 1886년 5월 충청도 홍성. 1m85㎝가 넘는 큰 키의 스님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바랑을 진 젊은 탁발승이 뒤를 따르며 투덜댔다. “스님, 좀 천천히 가시죠. 다리도 아프고, 짐도 무겁고.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스님은 아랑곳없이 걸었다. “아이고, 스님. 바랑이 무거워서 걷기가 힘듭니다.” 스님이 대답했다. “저기, 마을 우물가에 가면 내가 무겁지 않게 해줄 테니 어여 가자.” 두 사람은 우물가에 도착했다. 시골 아낙네가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걸어왔다. 스님이 말했다. “잠깐, 실례하겠소이다.” 아낙네가 돌아보는 순간, 스님은 여인의 얼굴을 감싸고 입을 맞추었다. “아이고, 이 무슨 망측한 짓이오!” 물동이가 떨어져 박살이 났다. 이걸 본 동네 남정네들이 몽둥이를 들고 달려왔다. 두 사람은 줄행랑을 쳤다. 동네 사람들을 완전히 따돌린 다음에야 둘은 숨을 돌렸다. 젊은 탁발승이 따졌다. “아니, 스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스님이 답했다. “자네, 죽어라 하고 도망칠 때도 짊어진 바랑이 무겁던가?” 일화 속의 주인공이 경허(鏡虛·1849~1912) 선사다. 뒤를 따르던 탁발승은 만공(滿空·1871~1946) 스님이다. ‘바랑이 무겁다는 생각도 자네 마음이 만든다. 다른 곳에 마음을 쓰면 그 생각도 사라진다. 마음이 모든 걸 짓고, 모든 걸 부순다’는 설법을 경허 선사는 직접 행동으로 한 것이다.

#장면2 산문 밖에서 볼일을 보고 들어오던 경허 선사는 한 여인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 방으로 함께 들어갔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제자들은 밥상만 안으로 들였다. 경허 선사는 그 여인을 자신의 방에서 먹이고, 씻기고, 재웠다. 절에는 난리가 났다. “조실 스님이 여인을 데리고 잔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제자들은 안절부절못했다. 몽둥이를 들고서 “저따위가 조실이냐”며 쫓아내려는 이들도 있었다. 사흘 후 그 여인이 방을 나섰다. 제자들이 쫓아가 봤더니 몸에서 고름이 뚝뚝 떨어지는 한센병 환자였다. 헐벗고, 굶주리고, 세상에서 손가락질 당하던 그 여인을 경허 선사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돌봤던 것이다.

설정 스님(오른쪽)이 승복 두루마기를 입은 서먼 교수와 차를 마시며 담소하고 있다.

 

조선 500년 억불정책을 거치며 한국의 선(禪)불교는 초토화됐다. 그 불씨를 되지핀 이가 경허 선사다. 마땅한 스승도 없고, 참선 수행의 전통도 사그라진 시대에 그는 “소가 되어도 코뚜레 뚫을 구멍이 없다”라는 말과 함께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상식을 훌쩍 넘어선 자리에서 파격적이고 거침없는 자비를 행했다. 올해는 경허 선사가 열반한 지 꼬박 100년이 되는 해다.

미국 뉴욕에서 『경허집(鏡虛集·경허 선사의 시문집)』을 읽고 감동한 로버트 서먼(71· 종교학) 컬럼비아대 명예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서먼 교수는 ‘킬빌’ ‘펄프픽션’ 등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배우 우마 서먼의 아버지다. 티베트 승려가 된 최초의 서양인이기도 하다. 1997년에는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에도 꼽혔다. 세계적인 불교학자로서 그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젊었을 때는 달라이 라마에게 직접 과학 공부를 가르친 스승이자, 지금은 절친한 친구다. 매년 수차례씩 달라이 라마를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눈다.

 

경허 선사

 

 

지난달 23일 서먼 교수는 충남 예산의 수덕사를 찾았다. 경허-만공으로 내려오는 선맥을 찾아서다. 티베트 불교 전문가인 서먼 교수는 수덕사의 최고 어른인 방장 설정(雪靖·71) 스님을 만났다. 두 사람은 1941년생 동갑내기다. 만공 스님은 수덕사의 최고 어른을 지냈고, 설정 스님은 그 맥을 잇고 있다. 아버지를 따라 절에 온 세 살 무렵의 설정 스님을 보고 만공 스님은 “이 아이는 중노릇밖에 할 게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어떻게 절밥은 입에 맞으십니까?” 설정 스님이 안부를 물었다. 서먼 교수는 “정말 건강한 음식입니다. 특히 무된장국이 맛있습니다. 저 같은 채식주의자에겐 최고의 메뉴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한국 사찰의 정원도 “무척 인상적”이라고 했다. “일본 교토의 정원은 너무 아름다우면서도 감옥 같아요. 줄을 쳐놓고 보기만 할 뿐,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죠. 그런데 한국 정원은 안에 들어가 거닐 수가 있으니까 훨씬 편안합니다.” 서먼 교수에게 물었다. “경허 선사에 대한 책도 읽고, 여러 일화도 들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무엇입니까?”

서먼 교수=가장 감동적인 에피소드는 한센병에 걸린 여인을 데리고 방에 들어간 겁니다. 경허 선사는 고름을 닦아주고, 여인의 마음을 치유해주고, 같이 먹고, 같이 잤습니다. 그게 가장 큰 감동입니다. 티베트에는 자신의 에너지를 움직이는 비밀스러운 수행법인 ‘탄트라’가 있습니다. 계율에 얽매이는 사람은 ‘뭘 하지 마라’에 묶이는데, 탄트라 마스터는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필요한 에너지를 자유롭게 꺼내서 씁니다.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굉장한 고수입니다. 경허 선사는 그걸 했더군요. 그건 ‘득도(得道)’의 레벨입니다. 경허 선사가 살아 계시다면 그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설정 스님=그때는 위생이나 치료는 엄두도 못 내던 시대였어요. 여인의 몸에선 지독한 냄새가 났겠죠. 곁에 갈 수도 없었을 겁니다. 경허 스님은 그런 여인과 마주 앉아 겸상을 했습니다. 기절초풍할 노릇이죠. 그건 일시적인 감정의 표출로는 불가능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진정한 자비심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잠시라도 경허 스님은 그 불쌍한 여인을 편하고 기쁘게 했던 겁니다.

서먼= 티베트 역사에서도 1대 달라이 라마(1391~1474)는 한센인을 돌보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자신도 한센병에 걸렸습니다. 1대 달라이 라마가 가르쳐준 수행법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기브 앤드 테이크(Give & Take)’ 명상법입니다. 먼저 상대방의 고통을 내가 받아들입니다. 다음에는 나의 고통을 나의 행복으로 바꿉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행복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겁니다.

설정=고통을 행복으로 바꾸는 건 참 중요합니다. 그게 문제를 푸는 거죠. 선(禪)에서도 자신의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문제를 풀 힘도 생겨납니다. 수영을 할 줄 알아야 물에 빠진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신이 맑아져야 주위가 맑아집니다. 그 힘으로 이웃을 돕는 겁니다. 그럼 수행에만 중점을 둘 건가. 그건 아닙니다. 수행과 중생 구제는 한 마차의 두 바퀴입니다.

 

‘킬빌’ 우마 서먼의 아버지 로버트 서먼 교수는 영화 ‘킬빌’에서 주연을 맡았던 우마 서먼(오른쪽)의 아버지다. 우마 서먼도 생활 속에서 명상을 한다. 서먼 교수는 “딸아이의 집에는 불상도 있다. 그런데 세상 모든 엄마들이 자식을 키우며 참선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Getty Images/멀티비츠]

 

 

서먼 교수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상류층 출신인 그는 명문 사립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를 다녔다. 졸업 직전에 친구와 함께 쿠바의 혁명 게릴라군에 지원했다. 당시 그는 17세였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고서 멕시코로 건너갔다. 학교에선 퇴학을 당했다. 1년 뒤에 그는 검정고시를 거쳐 하버드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부유한 상속녀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그런데 차고에서 펑크 난 타이어를 고치다 왼쪽 눈을 잃고 말았다. 그게 삶의 ‘터닝 포인트(전환점)’였다. 그는 존재에 대한 깊은 물음을 안고 홀로 인도로 떠났다. 그리고 1960년대 서양인으로선 최초의 티베트 승려가 됐다. 그리고 환속해 지금껏 50년째 수행을 하고 있다. 서먼 교수는 자신을 낮추며 운을 뗐다.

서먼=1대 달라이 라마는 “나의 고통을 나의 행복으로 바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겐 해묵은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나의 행복을 나의 고통으로 바꾸는 겁니다. 왜 그럴까, 가만히 들여다봤죠. 그랬더니 제 이기심이 행복을 불행으로 바꾸고 있더군요. 가령 좋은 일이 생기면 처음에는 “아,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면 “어? 더 좋을 수도 있는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나’는 결코 만족을 모르니까요.

설정=욕심은 끝도 없이 흘러왔다가 끝도 없이 흘러가는 겁니다. 그런 탐욕의 흐름에서 자신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 방법이 바로 ‘선(禪)’이고 명상입니다. 선은 불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경허 선사도 많은 사람에게 이런저런 방법으로 ‘멈추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서먼=맞습니다. 현대인이 우울증을 벗어나는 최고의 방법이 자비이더군요. 예를 들면 나의 고통은 생각하면 할수록 한없이 슬퍼지죠. 그런데 나보다 더 고통스러운 사람을 보면 어떻습니까. 내 고통이 점점 작아집니다. 그게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남의 고통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다시 말해 자비심을 키우면 키울수록 나의 고통이 작아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달라이 라마는 “이기주의를 하려면 ‘성공적인 이기주의’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이기주의를 하려면 성공적인 이기주의를 하라’. 무슨 뜻일까. 서먼 교수는 말을 이어갔다.

서먼=성공적인 이기주의는 진짜 내가 행복해지는 겁니다. 우리는 모두 나의 행복을 위해 살죠. 그런데 다들 행복해지나요. 아닙니다. 인도의 성자 산티데바(7~8세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 자신에 잡혀 있을수록 더 불행해지고, 남을 위해 생각할수록 더 행복해진다. 그게 바로 행복의 비밀이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결국 나 자신에게 그 친절이 돌아옵니다. 이 패러독스(역설)를 가슴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더 행복해지는 겁니다. 그런 게 바로 내면의 혁명입니다.

설정=경허 스님이 만공 스님과 함께 공주에서 천장암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날이 저물어 여관방에 들어갔어요. 옛날 여관은 방도 좁고, 빈대가 말도 못하게 많았습니다. 여관방의 불을 끄자마자 경허 스님은 코를 드르렁 골며 잠에 떨어졌습니다. 만공 스님은 빈대가 자꾸 물어뜯어서 잠을 잘 수 없었죠. 그래서 불을 켰습니다. 그랬더니 경허 스님의 몸에 빈대가 새까맣게 붙어서 물고 있는 겁니다. 그때 만공 스님은 ‘아! 도인의 경지란 저런 것이구나. 저렇게 걸림 없는 삶이구나’ 생각했다는 겁니다. 이처럼 ‘아프다, 아프지 않다’를 떠나 ‘지금 여기’에서 극락을 만드는 겁니다. 그게 내면의 혁명이죠.

 서먼 교수는 대학생 때 사고로 왼쪽 눈을 잃었던 이야기를 했다. “당시 저는 아주 불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절망했죠. 존재에 대한 강한 물음이 제 안에서 올라오더군요.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래서 인도로 갔습니다. 거기서 만난 몽골 스님들이 제게 말하더군요. 붓다의 가르침에는 ‘하나의 눈을 잃는 대신 천 개의 눈을 얻는다’고 돼 있다고 말입니다.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왼쪽 눈을 실명한 일이 제게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말입니다. ‘경허’를 공부하면서도 그걸 배웠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불행이 위대한 행운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말이죠. 저는 눈 하나를 잃은 대신 삶을 똑바로 볼 수 있는 ‘비전(vision)’을 얻었습니다.”

최근 뉴욕에는 ‘명상 열풍’이 불고 있다. 서먼 교수는 달라이 라마의 후원으로 뉴욕 북부에 힐링 센터를 세울 계획이다. 서먼 교수는 직접 나무를 깎는 목수이기도 하다. 한국 사찰의 건축미에 반한 그는 “힐링 센터를 한국식으로 짓고 싶다. 그런데 뉴욕에 건축 전문가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에게 물었다. 뉴요커들은 왜 명상을 하는 걸까.

“뉴요커들이 부(富)가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많은 사람이 압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임을 말이죠. 마음을 바꿔야 비로소 행복해짐을 아는 거죠. 요가가 뉴욕에서 유행하는 것도 자기 몸을 다스리면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쉽진 않다. 하루 하루 바쁜 일상을 사는 현대인들이 명상에 첫발을 들여놓기가 말이다. 명상의 ‘명’자도 모르는 사람일수록 더 망설여진다. 그래서 물었다. “명상에 관심은 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팁을 하나 준다면?”

서먼=우선 조용히 앉으세요. 그리고 당신의 호흡을 세어 보세요. 하나, 둘, 셋…. 그렇게 호흡을 하나에서 열까지 세어 보세요. 숨을 쉬는데 다른 생각이 떠오르면 다시 하나로 돌아가서 세면 됩니다. 그걸 계속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하나에서 열까지 세는 날이 옵니다. 가령 TV를 볼 때 리모컨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폭력적인 장면이 나와도 다른 채널로 돌릴 수가 없죠. 볼륨을 확 줄일 수도 없습니다. 그 장면을 계속 봐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도 그런 겁니다. 그런데 호흡을 하나에서 열까지 세다 보면 마음의 힘이 생깁니다. 그 힘으로 채널을 조정할 수 있게 됩니다. 명상을 하는 건 리모컨 없이 TV를 보다가 리모컨이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설정=처음에는 그런 방법도 좋습니다. 앉아서 호흡을 단전 아래로 내리고, 깊게 숨을 쉬는 겁니다. 호흡은 우리 몸의 노폐물을 바깥으로 빼주니까요. 몸 안의 가스가 나가고, 소화가 잘되고, 피도 잘 돌죠. 깊은 호흡을 하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걸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겁니다. 간화선에선 그걸 ‘자기를 반조하는 시간’이라고 부릅니다. 화나고, 즐겁고, 들뜬 마음을 돌아보다 보면 정돈이 됩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하는 겁니다.

대담이 끝났다. 바깥 산책을 위해 일어서는데 서먼 교수의 두루마기 옷고름이 약간 풀어졌다. 설정 스님이 일어나 손수 매어줬다. “생큐”라고 인사하던 서먼 교수는 손가락을 자신의 볼에 갖다 대며 “한국에 온 김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유가 있었다. “서양에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반가사유상이 있죠. 둘은 무척 대조적입니다. 표정부터 다릅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상당히 힘겹고 불행한 모습으로 생각합니다. 마치 ‘생각 많은 바보’를 보는 것 같습니다. 반면 반가사유상은 무척 편안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생각합니다.”

듣고 보니 한쪽은 생각을 비우고 있고, 또 한쪽은 생각을 채우고만 있다. 그래서 물었다. “그게 동양과 서양의 지향, 지혜(wisdom)와 지식(knowledge)의 차이입니까?” 서먼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도의 산티데바 성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은 너무 상처받기 쉬운 곳이다. 그래도 우리는 세상을 걸어가야 한다. 그럼 상처받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세상에 가죽을 깔 것인가, 아니면 내 발에 가죽을 댈 것인가. 세상에 가죽을 까는 건 어리석고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자신의 발에 가죽 신발을 대야 한다. 그게 바로 명상이다’. 반가사유상은 그걸 보여줍니다.”

 

원문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570/7830570.html?ctg=1200&cloc=joongang|home|newslist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