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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만사 ▣/이런일 저런말

시대착오적 中華질서에 집착하는 중국

by 세월따라1 2016. 8. 6.

'평등한 주권국의 평화 공존'은 인류 보편사적 정당성으로 근대 이후 세계 이끌어온 초석


'중국이 우주의 중심'이라 여기며 한국을 속국으로 보는 중화주의는 중국이 大國이 아님을 보여줘



구한말 위안스카이(袁世凱·1859~1916)는 마치 섭정왕 같았다. 20대 청년이 주차조선총리교섭사의(駐箚朝鮮總理交涉事宜)라는 거창한 직함을 달고서 청나라의 실질적 조선 총독으로 한반도에 군림했다. 무장한 채 궁궐 안까지 가마 타고 들어와 고종 임금에게 삿대질하기 일쑤였다. 당시 조선에 주재하던 구미 외교사절들조차 그를 감국대신(監國大臣)이라 부를 정도로 오만방자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문제에서 한국에 대한 중국의 고압적 태도는 구한말의 악몽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연일 한국을 융단폭격 중인 중국의 거친 언사(言辭)는 주권국가 간의 평등한 외교 관계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Pivot to Asia)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우려에는 일리가 있지만 지금처럼 난폭하게 한국을 몰아붙이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 당국은 한국 국민의 자존감이라는 역린(逆鱗)을 건드리지 않도록 절제해야 마땅하다.

중국의 주장과는 달리 사드는 미·중 간의 전(全) 지구적 전략 게임에서 긴박한 현안이라 보기 어렵다. 국내외 난제가 산적한 중국으로서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패소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이 훨씬 큰 사안이다. 신(新)실크로드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에 입각해 세계로 뻗어나가려는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이 거대한 암초를 만났기 때문이다. 남중국해 일대(一帶)의 국제법적, 세계 시민사회적 영유 근거는 무너지고 벌거벗은 힘만 남았다. 중국 헤게모니의 최대 위기다. 이에 비해 사드는 아직 실전 능력을 완성한 기술이 아닌 데다 유사시 북한 핵미사일로부터 주한 미군과 한반도 동남부를 지킬 방어 무기에 불과하다. 사드가 중국 포위용 미국 MD(미사일 방어 체계)의 하위 요소라는 중국 주장은 사실 왜곡인 데다 한국이 국제정치의 독립적 행위자라는 점을 송두리째 무시한다.

중국의 과잉 반응은 정작 사드 배치보다 훨씬 중요한 한·중 관계의 본질을 성찰케 한다. 중국이 과연 대한민국을 동등한 주권국으로 보는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근대 이후 세계는 '평등한 주권국가들의 평화 공존'을 정초한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이 이끌어왔다. 양차 세계대전의 파국 위에 건설된 국제연합의 세계 질서가 그 현대적 성취다. 유럽연합(EU)도 베스트팔렌 질서를 지역 동맹체 형태로 확장한 결실이다. 미국 문명은 유럽에서 나온 베스트팔렌 질서를 아메리카식으로 재구성한 미국적 세계 질서(팍스 아메리카나)를 이끌고 있다.





오늘날 베스트팔렌 질서와 미국적 세계 질서의 최대 경쟁자는 이슬람적 세계 질서와 중화적 세계 질서이다. 이슬람 문명을 논외로 한다면 동아시아에 사는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중국적 세계 질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평등한 다수 국가의 평화 공존'이라는 베스트팔렌적 이념은 중국 문명에는 낯선 것이었다. 중국의 천하(天下)관은 중국 통치자를 하늘 아래 만물을 지배하는 초월적 존재로 보았다. 우주의 중심인 중국이 문명과 야만을 나누는 절대 기준이었다. 한반도, 특히 조선 왕조는 이런 중화 질서의 자장(磁場) 안에 가장 적극적으로 녹아든 사례였다.

그러나 21세기에 이렇게 시대착오적 중화 질서의 복원은 불가능하다. 베스트팔렌적 세계 질서가 중화 질서와는 비교 자체가 어려운 인류 보편사적 호소력과 정당성을 갖기 때문이다. 상설중재재판소에서 패소한 남중국해 중국 영유권 주장은 동남아시아에서 중화 질서의 복원이 불가능함을 웅변한다. 동북아시아에서도 16세기 이래 일본적 세계 질서를 외쳐온 일본이 중화적 세계 질서를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한반도뿐이다. 중국이 전 세계가 규탄하는 핵보유국 북한을 껴안고 있는 이유와 사드를 빌미로 한국을 겁박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중화 질서로 새판 짜기'에 대한 국가적 집착 때문이다.

위안스카이는 임오군란(1882년)부터 청일전쟁(1895년) 직전까지 한반도에 폭압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개입했다. 청일전쟁 패배와 때 이른 청 제국의 멸망이 그 결과였다. 자신을 망치고 나라까지 망쳤다. 희대의 반면교사(反面敎師)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은 사드를 앞세워 우리에게 베스트팔렌 질서 대(對) 중화 질서 사이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중이다. 하지만 주권국가들의 상호 존중에 입각한 평화 공존은 역사의 지상 명령이자 세계 질서의 초석이다. 한국을 속국(屬國)으로 보는 조포(粗暴)한 중화주의는 중국이 진짜 대국(大國)에 이르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윤평중 칼럼

[출처]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8/05/2016080500347.html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